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soh Apr 24. 2020

흘러가는 데로 살자

행복의 기원_서은국, 21세기 북스, 2018


이 책은 저자가 행복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최초로 시작한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의 연구실에 유학을 간 이후, 저자가 반평생을 행복에 대해 읽고 생각하고 연구한 내용으로 집필되었다. 이 책의 내용들은 저자의 개인적 가치나 경험이 아닌 과학적 연구들에 기초한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p.10)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인데, 마치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생각 혹은 가치라는 착각이 들게 한다.(p.16)


인간의 마지막 종착지는 '행복역'이다. 너는 무얼 하기 위해 사느냐? 하고 물어보면 '행복하려고.'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면 지금은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물어보면 '아니, 지금도 행복해. 그렇지만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어.' 지금도 행복한데 지금보다 더 많이 행복해지는 것은 어떤 감정 상태에 도달하는 것일까? 저자는 행복에 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관점과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해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관점


이 여정에서 모양을 잡은 행복론은 다분히 목적론적이고 가치지향적이다.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며, 이것은 의미 있는 삶을 통해 구현된다는 식의 생각. ‘도덕책 버전’의 행복론이다.(p.49)

행복의 정신적 교주로 일컬어지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정확히 말하면 행복에 대한 논의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칭송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삶’에 대해 말했던 것이고, 또 그것은 ‘유데모니아 eudaimonia'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 좋은 eu'과 ‘정신 daimon'의 합성어인 유데모니아는 앞에서 언급한 자아성취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p.185)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은 ‘칭송받을 만한’ 삶의 구성 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착각’이다.(p.186)


성공=행복이라는 공식처럼 여태까지는 나는 '가치지향적'인 삶을 살아왔다. 늘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목적을 갖고 살아왔으며, 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또한 그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고 또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행복)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목표한 바를 달성하고 나면 짜릿한 성취감(쾌감)을 느끼지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자책하며 금방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모든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나는 그가 짜 놓은 프레임 안에 잘 가둬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행복의 기원 p.107


'로또에 당첨되면 행복할 거야.'


'많이 갖는 것이 행복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끝도 없이 많다고 한다. 예일 대학 경제학자 로버트 레인 교수에 의하면 지난 50년간 미국의 평균 가계 소득은 약 2배로 증가했지만, 미국인 중 '매우 행복하다'는 답변을 한 사람은 1957년 53%, 2000년도에는 47%다. 위의 그래프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듯이 미국 경제는 성장했지만, 행복 수준은 자로 그은 것처럼 그대로다. 빈곤을 벗어난 사회에서 돈은 더 이상 행복의 키워드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


복권 당첨, 새 집. 짜릿하지만 그 어떤 대단한 일도 지속적인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며, 덕분에 좌절과 시련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지만, 기쁨도 시간에 의해 퇴색된다는 것이다. (p.109)



같은 경우에서 한국인의 행복 스위치는 어떻게 작동할까?


'로또에 당첨되면 행복할 것 같아.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가족 모두 다 먹여 살릴 수 있고, 가족들이 편안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할 거야.'


우리가 살고 있는 집단주의 문화는 사람에 묻혀 사는 문화다. 타인은 나에게 단맛과 쓴맛을 모두 느끼게 하는 존재다. 행복의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일상에서 주로 어떤 맛으로 나타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문화가 가진 여러 가지 양념은 이 맛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p.164)


우리 가정의 스위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작동하거나 멈추거나 한다. 가족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이고, 가족 중 누군가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게 되면 그 불행이 걷어질 때까지 내 행복도 잠시 도려내야 한다. 가족 중 불행한 자가 있음에도 나 혼자 행복을 느끼는 것은 유교적 사상에 어긋나는 것일 테니까.


집 밖을 벗어나면 상황은 더 열악하다. 타인과 비교하며 내 행복의 높낮이를 좌우하는 지표를 만들게 된다. 타인의 불행을 지렛대 삼아 내 행복을 가늠하거나, 혹은 나의 불행을 지렛대 삼아 타인의 행복으로 가늠되거나... 집 안에 있으나 집 밖에 있으나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혹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인의 특성상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이라는 씨앗은 개인의 자유감이 높은 토양에서 쉽게 싹을 틔운다. (p.162)



한국인의 씨앗은 처음부터 종자가 달랐다. 심리적 유대감(혹은 연대)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회의 특성상 행복을 성취하기란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유감을 높이는 방편으로 알베르 카뮈의 얘기를 빌어본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 To be happy, we must not be too concerned of others."



타인의 시선에 둔감해지는 노력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


생존, 욕정, 번식과 같은 본능들과 뒤범벅된 매우 원초적인 모습이다. 행복의 실체에 더 가깝지만, 여전히 학계에서는 외면받고 있는 얼굴이다.(p.50)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고, 행복은 이 청사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p.64)

'생존 비법 패키지’를 뜯어보면 두 가지 중요한 내용물이 나온다. 하나는 ‘고통’이라는 경험이며, 두 번째 내용물은 ‘쾌감’이다.(p.91)

인간은 동물이라는 사실로 되돌아가 보자. 쾌감 같은 긍정적 정서의 기능은 동물이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환경이나 자원에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뇌는 마치 동전 탐지기처럼 생존에 필요한 자원으로 우리를 유도하는데, 생존에 절대적인 자원일수록 그것에 근접할 때 신호(쾌감)가 강렬하게 울리는 것이다.(p.150~p.151)


현재 심리학계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보다는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100프로 동물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존과 번식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감정을 갖고 있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감정을 갖게 된 인간은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이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 4단계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은 켄릭 등이 재조명한 욕구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매슬로는 주요한 다섯 가지 욕구에 관한 인간의 동기를 내재되어 있는 것,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상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진화론, 생물학, 인류학, 심리학 등의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욕구 이론을 설명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욕구 피라미드에 관한 가장 최근의 연구는 더글러스 켄릭(Douglas T. Kenrick), 블라다스 그리스케비시우스(Vladas Griskevicius), 스티븐 뉴버그(Steven L. Neuberg), 마크 샬러(Mark Schaller)가 2010년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것으로 매슬로의 욕구 이론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했다.


이들은 매슬로가 제시한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존중의 욕구 등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들은 그대로 보존하되, 인간의 욕구를 설명하는 데 있어 생물학적, 진화론적 시각을 덧붙였으며 욕구 간 관계에 대한 논의를 매슬로와는 달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들이 재구성한 욕구 피라미드는 다음 그림과 같다. [네이버 지식백과] 욕구 단계 이론 [hierarchy of needs theory] (심리학 용어사전, 2014. 4.)


켄릭 등이 재조명한 욕구 피라미드(2010), 출처 : 네이버


피라미드의 형태와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매슬로의 욕구 이론과 비슷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취한다. 먼저 자아실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욕구는 피라미드의 하단부에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나 켄릭 등은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배우자를 만나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번식(reproductive) 측면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 행동의 진화론적인 메커니즘을 강조하는 이들의 시각이 잘 나타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각 욕구 단계가 단절되고 독립적인 형태를 취하는 매슬로의 피라미드와 달리 이들의 피라미드는 하위 욕구가 상위 욕구에서도 중첩되어 나타나며 여전히 영향력을 미침을 보여 준다.


집필 : 손영우(연세대학교 심리학과)

[네이버 지식백과] 욕구 단계 이론[hierarchy of needs theory] (심리학 용어사전, 2014. 4.)




먹고, 자고, 배설하고, 번식하는 동물. 나는 인간의 이러한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영화가 '기생충'이라고 생각한다. 2019년 6월 극장가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던 이 영화를 보며 '그래, 그렇지. 껍데기를 벗어던지면 인간은 동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라는 생각을 하며 극장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당시 영화를 관람하고 남겨뒀던 감상평을 글 하단에 링크로 별도 표기하며 '인간은 동물'이라는 저자의 가설에 사견을 보태어 본다.



내가 느끼는 행복이란?


'행복'이란 것은 슬픔, 기쁨, 분노, 좌절, 불행 등 인간이 만들어 낸 단어, 그 테두리 안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떴을 때 유독 행복한 기운이 감도는 날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날은 그렇지 못한 날도 있을 것이다.


감정 표현에 자유로운 이들의 입에서 '행복'이란 단어가 자주 출몰하는 것을 본다. 예를 들자면, 올해 10살이 된 내 아이는 하루 중 대부분을 기쁘고, 슬프고, 짜증 나고, 화내고, 때론 분노하며 어떨 때는 만족함도 표현하고 또 행복해한다. 한 번은 궁금해서 그녀가 느끼는 기쁜 감정과 행복한 감정의 차이는 어떨 때 기인하는 것인지 관찰해 본 적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뜬 그녀 옆에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란히 누워 있는 나를 보던 그녀가 "아! 행복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듣는다. 갖고 싶은 물건을 사주는 나를 향해 '엄마, 정말 고마워. 난 정말 행복한 아이야.' 반면에 갖고 싶은 물건을 사주지 않을 때는 '난 정말 불행한 아이야.'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을 때면, 그녀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타인(엄마)'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며, 숙제를 하다가 혼자서 무언가를 해냈을 때 느끼는 감정은 기쁨이나 짜증으로 표출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편은 내게 가끔 '눈치가 없다.'거나 '말 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얘기를 한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대답해 준다. 그가 전하는 한국인의 정서란 '돌려 말해도 잘 알아듣고, 잘 넘겨짚으라.'는 얘기인데 내가 그 부분에 취약하다나 뭐라나. 남편의 표현처럼 나는 매사 조금 둔감한(?) 편이다.


아이에 비해 감정 표현에 서툰 내가 할 수 있는 극강의 표현은 기쁘다거나 짜증 나거나 화가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목적한 바를 달성했을 때 만족스러운 성취감(쾌감)과 기쁨을 느낀다. 둔감한 성격의 내가 행복을 느낄 때는 '이타심'이 작동할 때이다. 의도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타인에게 무조건적인 나눔을 실천할 때 나는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 나와 내 아이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책을 읽고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분법적 사고(이를테면 내향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 목적론과 진화론)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성격이 꼭 이분법적으로 나뉘지는 않으니까.


행복에 관한 과학적 결과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귀결도 나를 조금 기운 빠지게 만들었다. 인간은 결국 동물이란 것이구나라고 자조적인 생각에 빠졌다가, 아니지 그런 의도가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너는 지금(Hear and now) 그대로 충분히 행복한 상태이다.'라고 위로를 건네주는 것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현재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졸업 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행복 분야 권위자인 에드 디너 교슈의 지도를 받고,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후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4년 뒤 이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받았다.


저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표적인 행복 심리학자다. 그의 논문들은 OECD 행복 측정 보고서에 참고자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 '세계 100인의 행복 학자'에 선정되어 <세상의 모든 행복>에 기고했다.


모교인 연세대학교로 돌아와 느끼는 큰 보람은 바로 강의다. '행복의 과학'이라는 저자의 강의는 "이 수업을 들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수강 대기자가 700명을 넘는다. 최근에는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 CEO 강연 등을 통해 행복에 대한 '차가운' 사실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바른 마음을 쓰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