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추격전이 시작된다

시험에 쫓기는 자 vs 시험을 쫓는 자

by 아마르기

일반고에 다니는 고등학생이 수능을 치르기 전까지 치러야 할 시험은 몇 개일까?


한 학기에 상대평가 과목은 1학년 7과목, 2학년 8과목, 3학년 4과목. 과목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본다. 1학년 28회, 2학년 32회, 3학년 8회 더하면 내신 시험만 총 68회다.


내신 시험만으로 끝이었으면 좋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모의고사와 수행평가도 있다. 모의고사는 1-2학년 동안 연 4회, 3학년은 6회. 과목당으로 계산하면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탐구 두 과목, 총 84회로 볼 수 있다.


수행평가는 각 과목마다 보통 두 번 정도 시행한다. 내신 시험과 마찬가지로 약 68회다.


수능을 보기 전까지 아이들은 총 220회의 시험상황에 노출된다. 평균 3.6일마다 한 번씩 시험을 치르는 셈이다.


내가 과목당 평가로 계산한 이유는 아이들의 공부 시간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50분 동안 25-30문항의 문제를 풀기 위해 몇 날 며칠 공부를 한다. 그러니 중간고사, 기말고사 각 1회로 숫자를 퉁칠 수 없다. 시험 하나하나에 아이들의 노력과 고민이 들어가 있다.


고1 여름 방학이었다. 하림이는 방학에도 마음 놓고 쉬지 못했다. 학원에서 다음 학기 수업을 선행하느라 여전히 바빴다. 오랜만에 바람을 쐬러 외곽 카페에 나갔을 때, 하림이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이제 곧 추격전이 시작될 것 같아요.

학원 숙제, 학교 숙제 그리고 생기부... 곧 있으면 숙제들이 저를 추격할 거예요.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웃음엔 허기가 있었다.


나는 아이가 치러야 하는 시험 종류와 개수를 따져보고 이제야 하림이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된다. 하늘에서 융단폭격을 하듯이 내려오는 시험에 쫓기는 하림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한 시험이 끝나면 부활한 듯 다가오는 또 다른 시험. 점수, 등급이라는 수치로 정확하게도 아이의 실력이 측정된다. 친절하게도 옆의 친구와 쉽게 비교할 수도 있다.


시험 전에는 불안과 초조, 시험 후에는 잠시 안도하지만 또다시 밀려오는 평가에 대한 거부감이, 친구들보다 성적이 잘 나오면 우월감이 들었다가도 반대로 떨어지면 열등감과 패배감이 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220회의 평가에 의해 쫓기는 기분은, 초원에서 사냥당하는 사슴과 같지 않았을까?


나의 과거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나도 학교에서 시험을 자주 치렀다. 지금처럼 내신이 있었지만 등급 대신 석차로 나왔고, 대입 반영 비율이 적었다. 내 성적에 일희일비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비교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쉽게 평균등급으로 줄 세우지는 않았기에 날을 세울만큼 경쟁심이 들거나 질투가 크진 않았던 것 같다.


모의고사도 월례행사처럼 치렀는데 나는 그것을 게임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공부-성적확인-공부-성적확인'을 루틴으로 만들었다. 나중에는 성적 그래프를 그려서 오르고 내리는 점수를 보며 재미도 느꼈던 것 같다. 워낙 모의고사 점수 등락이 주식처럼 변동이 있었기에 가끔은 친구들하고도 서로 보여주며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내가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나는 공부를 즐겼다.'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어느 정도 시험을 '추격'하며 공부했고, 우리 아이는 시험에 '추격'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마음가짐의 차이일까, 아니면 평가 시스템의 문제일까?시험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시험이란 재능이나 실력 따위를 일정한 절차에 따라 검사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찾고, 실력을 기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지, 아이들은 그럴 시간도 없이 평가의 연속에 내몰리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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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하림이의 최종 성적과 생활기록부를 입시 시스템에 입력하면 AI진단으로 합격예측 보고서까지 확인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편리함, 예측가능성의 극치였다. 등급제의 유용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평가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절차로 인해 우리 아이들은 점점 피폐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키우고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 아이들이 시험에 추격당하지 않고, 자신이 시험을 추격하는, 그런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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