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는' 훌륭합니다만
우리나라만큼 아이들 교육에 온 사회 구성원이 한마음이 되어 노력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최근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여러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중 하나는 수행평가 운영 방식의 변화로, 2025학년도 2학기부터는 모든 수행평가를 '수업 시간 내'에 실시한다는 원칙이 본격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부모의 개입 가능성이 높은 과제형 수행평가와 과도한 준비가 필요한 암기형 수행평가를 제한하기 위해 세워진 방침이다.
엄마, 수행평가가 휘몰아치고 있어요.
고등학교 1학년을 마무리해 가는 시점에서 하림이가 했던 말이다. 회오리바람처럼 몰려오는 수행평가. 하림이가 고등학교 2년 반동안 학교에서 실시했던 수행평가 목록을 정리해 봤다.
상대평가 과목에서만 총 74번. 대부분이 과제형과 암기형이었다.
과제형: 탐구보고서, 조사활동, 독서감상문, 서평, 에세이, 포트폴리오 등(국어, 수학, 과학, 사회)
암기형: 어휘, 말하기, 읽기 등(영어, 일본어)
수업 시간에 비교적 부담 없이 한 활동은 한문의 ‘부채 만들기’나 ‘광고지 속 한자어 발표’, 통합과학의 ‘서클맵 작성’, 통합사회의 ‘컷팅만화 그리기’ 정도였다.
나는 이번에 수행평가 목록을 정리하면서, 아이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입에 반영되는 내신시험만으로도 한껏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그 사이에 이렇게 많은 수행평가가 있었다니 우리는 도대체 아이들을 어떤 환경에 몰아넣고 교육했던 걸까?
1999년 처음 도입된, 수행평가의 목적은 분명했다.
"암기 위주 지필평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고차원적 사고 능력의 발달을 지원하기 위해"
그런데 하림이에게 수행평가는 전인적 성장이나 사고력 향상의 기회가 되었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활동을 통해 배우고 성취한 것이 있다면? 지필고사와 달리 더 깊이 생각하게 자극하고 발전시킨 과제가 있었을까? 나는 기대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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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서 1986년 국민학교 성적표를 꺼내 보았다. 표지의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과거의 지식위주, 점수위주의 그릇된 학력관을 과감히 씻고 전인교육, 인간교육의 입장에서 평가방법을 개선하여…"
40년 전에도 우리는 같은 말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나? 더 치열한 경쟁 속에 있다. 더 촘촘하고 정확하게 만들어진 평가 시스템 덕분에.
약속을 못 지킨 어른이 된 것 같다. 동조자가 된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든다.
엄마, 수행평가는 싹 다 없어져야 해요!
이 외침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이 아닐까?
‘실수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오직 바보만이 자신의 실수를 지속한다’는 키케로의 말을 새겨, 우리 교육이 수 십 년 동안 하던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