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꿈이 있었지
*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요일 발행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요. 변명을 하자면, 주말 내내 극심한 치통이 생겨서 거의 잠만 잤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명은, 역시 저는 '제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K-고등학생의 말들을 쓸 때에도 저에 관한 글은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썼었는데, 이번 이야기도 여지없이 저를 주인공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 이를 활자화하는 데 있어서 저항감이 꽤 있네요. 이 또한 글을 쓰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DELL 노트북은 2006년에 구입한 물건이다. 단순한 기계였다면 이렇게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 노트북은 내가 혼수 시계를 대신하여 선택한, 상징적인 물건이다.
2006년 1월 6일. 나는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다. 어느 11월, 우연히 교회 앞마당에서 마주쳤고, 마치 그토록 찾던 신랑, 신붓감인양 속전속결로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예물 교환을 할 때, 나는 남편에게 시계 대신 노트북을 사고 싶다고 했다. 손목에 무언가 걸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당시에 박사 수료 상태였다. 내게 더 필요했던 것은 논문을 쓸 노트북이었다.
나는 그 노트북으로 학위논문을 쓰고 졸업한 뒤, 계속 연구를 하여 업적을 쌓은 후 당당히 어느 대학의 교수가 될 것이라 믿었다. 대학원 선배들이 갔던 길을, 자연스럽게 나도 따라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길은, 결혼하고 석 달 만에 임신하고, 1년 만에 첫 아이를 낳으면서 갑자기 정지 신호를 받았다. 그 표지판을 세운 것이 나였는지, 남편이었는지, 시댁이었는지, 혹은 상황이었는지, 지금도 결론 낼 수 없다. 다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나의 꿈은 서서히 '남편의 커리어와 아이들의 성장'이라는 과제 뒤로 조용히 밀려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어두워질 때면, '나는 이제 없어도 되는 존재인가?'라는 몹쓸 생각이 들곤 한다. 나 하나 내일 당장 없어져도 남편과 아이들은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갈 것만 같다.
그러나 그런 순간마다, '내가' 나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붙잡아야겠다는 결심을 되뇌어본다. 내가 나를 살리지 않으면 누가 나를 대신 살아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엄마가 절망을 품고 살아가면,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고, 브런치북을 만들어보려 애쓰는 것 역시, 나를 좀 살려보고자 하는 작은 몸짓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도, 앞으로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문장을 만났다.
" 어머니는 비이기심을 통해 자녀들이 사랑받는 것이 무엇이며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녀의 비이기심의 영향은 그녀의 기대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나타내는 행복감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불안해하고, 긴장해 있고, 어머니의 비난을 두려워하고, 어머니의 기대에 따라 살려고 애를 쓴다. (중략) 우리는 자녀들에게 사랑, 기쁨, 행복이 무엇인가를 경험하게 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전도력이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