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흔적
“이거 우리 엄마가 사용하던 물건들이에요. 뭐, 한국 사람들은 좀 찝찝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요. 그래도 필요하신 분들은 가져가서 쓰시면 저는 좋아요. 우리 엄마가 쓰던 거니까.”
단발머리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남자 집사님이, 그 외모와는 대조되는 다소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은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일주일쯤 된 시점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을 열고 거실에 물건들을 펼쳐놓은 뒤, 어머니의 물건을 이웃들에게 나누고 있었다.
그때 우리 부부는 미국에 입국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라,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거의 없었다. 부엌용품은 물론이고 가구나 가전제품도 거의 없이, 원베드룸에 매트리스 하나만 깔고 지내고 있었다.
나는 사실, 돌아가신 분의 물건을 물려받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나와 친분이 있던 분도 아니었기에, 그분의 물건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해맑게 물건을 소개하는 남자 집사님의 편안한 태도 덕분에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졌다.
남편과 나는 여러 물건 중에서 접시 네 개와 컵 두 개를 선택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스페인에서 구입하셨다는 천사 커플 장식품도 함께 가져왔다.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때 얻은 접시를 지금까지도 쓰며,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그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어머니의 물건을 이웃들에게 흘려보내던 남자 집사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작년에는 아주 가까운 분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우리 막내가 태어날 때부터 10년 넘게 정기적으로 만나온 교회 권사님이었다.
교회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정에서 식사와 함께 간단한 예배를 드리는 ‘구역모임’을 한다. 한 번 구역으로 묶이면 가족처럼 교제하며, 관혼상제 때도 서로 왕래하며 지낸다.
권사님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모처럼 나를 챙겨주셨다. 산후조리 중일 때 미역국을 한 솥 끓여주셨고, 집안일을 도와주기도 하셨다. 남편과 다투고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본인도 그런 과정을 겪었다며 따뜻하게 위로해주셨다. 아이들이 속을 썩일 때면 “나도 세 아이 키우느라 힘들었지만 기도하며 여기까지 왔다”고 격려하셨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쌓였던 권사님이 작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5년 동안 암투병을 하시면서도 매주 구역모임에 나오셨고, 언제나 씩씩하고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직접 만든 현미효소, 덖은 꾸지뽕 열매 차, 고추 다진 양념, 농장에서 공수한 딸기 등 — 권사님의 손끝에서 나온 정성 어린 선물들은 언제나 풍성했다. 권사님의 사랑은 늘 그렇게 시간과 물질로 표현되었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남는다. 사랑한 만큼 인간은 흔적을 남긴다.” — 이어령
이어령 교수는 인생의 본질을 ‘사랑’이라 정의했다. 지식도, 명예도, 재산도 사라지지만 사랑만은 남는다고 했다.
사랑으로 섬기며 남긴 물건들에는 그 사람의 영혼이 함께 남는 것 같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 물건 속에서 그 사람의 영혼을 읽고,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