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벗겨야 할 때가 된
나에게 글쓰기는 고백과도 같다. 거절당하지 않을까 두렵다. 내 생각을 나체로 그러내는 일 같아,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야 겨우 수줍게, 활자로 옮길 수 있다.
'분홍 아기 이불'은 첫째 딸, 하림이와 관련된 이야기다. 귀여운 요정이 그려진 분홍빛 속싸개 이불. 그 이불에 감싸여 있던 하림이의 생애와, 아이를 양육한 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 달이 넘도록 발행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글을 미루고 말았다. 대학교 입시 결과라는 하림이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을 지나온 뒤에도,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19년 간 하림이를 양육하며 '대입성공'이라는 트로피를 얻기 위해 달려온 것일까. 그것을 얻지 못한 자의 패배감 속에서, 아이와 나 모두 어두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 정도면 잘 해냈다고 스스로 다독여 보지만 입가에는 억지웃음만 나온다.
분홍 아기 이불에 쌓여 있던 하림이를 안았던 기억을 애써 떠올려본다. 그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던가?
한 인간의 시작이었다. 나와 하림이를 이어주던 탯줄은 분명히 끊어졌지만, 나는 하림이를 보며 어쩌면 완벽한 인생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하림이는 두 손으로 만지기 조심스러울 만큼 작고 연약한 존재였다. 아기가 울면, 나도 함께 울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고, 그조차도 모르는 나 자신이 절망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하림이를 양육하는 내내 나는 무지한 엄마였다. 아니, 어쩌면 무심한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내 생각과 방식대로 아이를 잡아당겼던 것 같다.
하림이는 입시 결과, 즉 패배의 원인을 엄마인 나에게로 돌리고 있다. 내가 하림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덮어두었던 '분홍 아기 이불'이 어쩌면 아이가 세상과 마주할 시야를 가렸던 것은 아닐까. 그 이불을 제때 거둬주지 않아 아이를 더 힘들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두렵다. 곧 하림이는 내 품을 떠나 혼자만의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하림이가 스스로 생존할 수 있을까 겁이 난다. 그러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왔기에 나와 하림이 모두에게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덮어주었던 작은 분홍 아기 이불이 아닌, 더 커다란 보호하심이 하림이와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