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한 조각뿐인데
내 나이 47세.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대학교재와 학위논문이다.
나는 97학번이고, 대학을 졸업한 것은 2001년이다. 박사학위 논문은 2013년에 마무리했다.
대학 졸업은 24년 전, 박사학위 취득은 13년 전의 일이다.
아동학을 전공한 나는 보육교사로, 대학 강사로 일해왔다.
대학교수 임용에도 도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 이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비전임, 시간강사로 강의를 이어가며 가정과 아이들을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강사의 자리는 계속 이어갈 수 있었지만, 나는 발전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남이 만들어 놓은 교재로 강의하는, 앵무새 같은 나 자신이 싫었다.
초라해지지 않으려면 연구에 시간을 투자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의 강의 준비만 했고, 남은 시간은 가정과 아이들에게 썼다.
아이들이 중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고,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 믿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 자신을 돌아볼 때, 그리고 우리 가정과 아이들을 바라볼 때 그 선택이 마냥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지적 허영심을 위해 학위를 받았고, 그 이후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노력 대신 편리함을 선택하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내면에는 ‘박사학위자’라는 자만심이 가득했다.
껍데기를 버리고 싶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교만한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대학교재와 학위논문이 책꽂이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 뿐인데도, 나는 여전히 허영심에 젖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흔들리며 살고 싶지 않다.
인정이나 직함, 뒤늦은 만회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기준 하나를 붙잡고 살고 싶다.
그것이 학문이든 삶의 태도이든, 상황에 따라 변명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었으면 한다.
이제는 그 기준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며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