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디오 플레이어

과거를 붙잡는 사람

by 아마르기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버리고 다시 폴더폰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아마 나는 평생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이미 이렇게 익숙해져 버린 편리함을 포기하고 다시 불편함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버튼을 몇 번 누르면 원하는 정보를 바로 얻을 수 있고, 멀리 있는 사람과도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한 번 익숙해진 편리함은 좀처럼 놓기 어렵다.


그런데도 마음 한켠에서는 이상하게도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편한 것투성이였던 시절이다. 기다려야 하는 일도 많았고,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런데도 가끔은 그때의 공기가, 그때의 속도가, 그리고 그때의 내가 문득 그리워진다.


이것이 단순히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레트로 감성’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그때의 삶이 더 따뜻했기 때문인지는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시절의 불편함은 잊고, 그때의 온기만 기억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다. 정보는 넘쳐나고, 그 정보는 점점 더 정확해진다. 이제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나 대신 판단까지 해주고 생각까지 대신해 주는 AI가 등장한 시대가 되었다. 세상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편리해지는데, 그 속에서 나는 가끔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내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내가 늘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자꾸만 스스로를 작게 만들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20년 전에 신혼 살림으로 구입했던 삼성 비디오 플레이어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집 안 한켠에 그대로 놓여 있는 그 기계는 이제 거의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사실 그 비디오 플레이어를 작동시킨 것도 열 번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남편과 내가 소파에 앉아 비디오로 영화를 보거나 무언가를 함께 보았던 기억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을 치우지 못한다. 고장 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니다. 그저 그 자리에 조용히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물건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그 비디오 플레이어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그 시절의 시간을 붙잡아 두는 작은 표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신혼이었던 우리, 아직 모든 것이 서툴렀던 그 시절,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었던 그때의 공기까지 함께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그 물건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조금은 서툴렀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더 단순하고 따뜻했던 그때의 시간을.


아마 그때가, 참 좋았던 모양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