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땀나는 첫 팀플의 추억

Learning team 멤버들과의 만남

by 아마로네

첫 1년간의 학교생활은 주로 배정된 반과 Learning team이 중심이 되었다. Learning team 멤버들과는 초반에 소소한 활동과 게임같은 것도 함께 하고, 필수수업의 여러 팀플 과제들을 함께 해결해야 해서 최소 주 1-2회는 모이고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첫 날 자기소개 시간에 잠시 모인 후, 다음 날 따로 팀 미팅의 시간이 배정되어 건물 앞 테라스 자리에 모였다. 모든 팀은 학교에서 팀원을 구성했으므로, 전체 학생의 구성과 동일하게 약 1/3의 외국인과 1/3의 여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팀에서는 나와 인도 남학생인 Karam이 외국인을, 또한 나와 백인 여학생인 Rachel이 여성을 대표하고 있었다. 또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 팀 6명 중 한 명은 LGBT였다. 미국 모든 학교들은 다양한 학생들을 입학시킨다는 점을 큰 강점으로 홍보하며, 대표적으로 외국인과 여성의 입학비율을 전면에 내세운다. 외국학생들만을 위한 "International Week"이라는 오리엔테이션도 1주일 먼저 진행했다. 크게 도움 된 점은 없었지만.


모여서 간단한 small talk을 나누는데 이미 대화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어려워서 멘붕에 빠졌다. 말이 빠른 동부출신 Dan과 인도억양이 강한 Karam의 말이 특히 문제였다. 간신히 정신줄을 잡고 겨우 연락처를 주고받자는 이야기를 캐치했다. 모두의 전화번호를 입력하자마자 iMessage로 단체방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곧 인도 친구가 안드로이드 사용자라 단체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어, Facebook Messenger, Whatsapp 등 무엇을 쓸까 논의하다 Slack을 사용하기로 했다. 미국에는 왜 카카오톡 같은 대세 메신저가 없을까 의문이었는데 이제야 알았다. 그들에게는 거의 스마트폰=아이폰이어서 iMessage가 모든 기능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가끔 구글 픽셀폰을 쓰는 친구들이 있지만 아주 소수였다.


첫 번째 과제가 주어지고, 수업이 없는 금요일에 모여 과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당일 학교 가는 길에 작은 사고가 발생해서 나는 첫 모임부터 꽤 지각을 하고 말았다. 당황스럽고 미안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미안한데 내가 커피 살게"라고 했더니 정말 질겁을 하는 표정으로 괜찮다고 다들 피했다. 아무리 더치페이가 무조건인 문화라지만 너무 못할 말을 한 분위기라, 지각한 미안함에다가 민망함이 더해졌다. 그 후로는 어떤 모임도, 과제 제출도 절대 늦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6명이 모두 각자의 노트북을 꺼냈다. 앉아서 토론이나 좀 할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하고 집에서 나오기 직전 노트북을 챙겼는데, 노트북마저 안 가져왔다면 정말 어떤 취급을 받았을까 아찔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대학을 다닌 게 마지막인 세대는 요즘 스타일 팀플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한 명이 스크린 공유로 과제 케이스와 질문을 띄워 같이 읽어보면서, 각자 파트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나는 대부분 듣고 있었지만 그래도 케이스는 열심히 읽었기에 한 두마디 첨언을 할 수 있었다.


"자, 그럼 구글 드라이브 우리 팀 폴더 아래 워드파일에 각자 파트 작성 시작하자." 뭐라고? 이제 집에 가서 (예를 들면) 내일까지 쓰는거 아니었니? 나의 당황스러움과는 상관없이 다른 친구들은 각자 편한 테이블로 옮겨서 우다다 타이핑을 시작했다. 아무 준비없이 이렇게 첫 과제 작성을 하다니, 그것도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파일에 내 영작 실력을 남겨야 하다니. 나처럼 외국인이지만 현지인만큼 영어가 능숙한 인도 친구의 등짝만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배신자.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글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그날 밤 늦게까지 완성해 겨우 저장한 내 글은 우리 팀의 리더격이었던 Andy의 세밀한 수정을 거쳐 내 원글이 거의 남지 않은 채로 제출되었다. 첫 팀플은 여러모로 끔찍한 기억만을 남겼다.


다행히 그 다음부터는 첫 팀플보다 조금씩 나아졌다. 내 작문 실력이 나아졌다기 보다는 팀원들이 점점 바빠지면서 과제 퀄리티에 대해 덜 힘을 주었기 때문이었지만. 또한 그나마 내가 자신있었던 회계, 통계 등의 과목에서 팀 과제에 기여할 수 있게 되면서, 내 마음의 부담도 조금 덜어졌다. 제일 큰 이유는 서툰 외국인 학생에게도 우호적이었던 팀원들의 배려 덕분이었다. 내 표정이 애매하면 천천히 말하고 다시 확인하면서 내가 따라오고 있는지 신경쓰던 Andy를 비롯해, 다들 나보다 5-6년은 어리지만 똑똑하고 유연한 친구들 덕에 언젠가부터는 팀플을 꽤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고요한 일요일 오후, 도서관 소회의실에 모여앉아 시리얼바를 나눠먹으며 토론 반, 잡담 반을 늘어놓던 시간들은 미국에서의 학교생활을 떠올릴 때 꼭 빠지지 않을 기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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