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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Jan 01. 2023

4세와 41개월


아이는 이제 41개월이 되었다. 아니 40개월인가? 이제 솔직히 너무 헷갈린다. 세돌이 지나고부터 아이의 나이를 묻는 질문에 4살이에요. 라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렇다.


어린아기를 0세가 아닌 0개월로 부르는 것은 아기들의 성장이 그만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생애 10주차 아기와 11주차 아기는 많이 다르고, 8개월과 9개월 아기도 꽤 다르다. 외형적인 크기부터 할수 있는 것, 먹고 자고 노는 것들이 크게 변화한다. 그와 다르게 0세라고 불리기 시작한 아기는 그만큼 성장의 속도가 그전과는 다르다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솔직히 아이가 없던 시절에 자기 아이를 ‘4살이에요’ 대신 ‘41개월이에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직장동료들을 볼 때, 일단 ‘41개월이면 어느 정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고 두번째로는 ‘그정도면 그냥 몇 살이라고 하면 되지않나’하고 조금 유난이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직장동료끼리 그 아이의 발달속도와 안부가 아주 궁금해서 묻는다기 보다는 가벼운 토크에 적합한 소재이기 때문인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 41개월인 나의 아이는 34개월이었던 지난 1월과 얼마나 다른 아이인지! 오늘 one, two, three..하며 갑자기 영어로 ten까지 읽은 아이는 1월에 한글로도 열까지 세지 못했다. 지난주에 아이는 서른을 배워서 엄마의 나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주에는 기저귀에서 완전히 졸업했고, 그 전주에는 자러 가자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형광등 스위치를 스스로 눌러서 혼자 책을 읽고 놀았다. 한편 여전히 깜짝 놀랄만큼 황당한 이유로 - 잠자리에 엄마보다 먼저 도착하지 못해서라던가, 본인이 남긴 반찬을 아빠가 먹어서와 같은 - 엉엉 울어서 육아고 훈육이고 다 부질없다는 한탄이 절로 나오게 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41개월이나 34개월이나 24개월이나 똑같지만 그래도 34개월에는 왜 우는지를 말해줄 수 있을만큼 언어능력이 향상되었으니, 그 의미에서는 4세가 비슷한 수준으로 대동단결인지도 모르겠다.


현 정부의 공약 중에 한국 나이제도를 폐지하고 만 나이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을 보았을 때, 처음엔 다른 성인들처럼 나도 꽤 흡족했다. 3n살에게 -1 혹은 -2까지 될 수 있다는 것은 구미당기는 말이 아닐 수 없으니까. 하지만 어딜가나 묻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4살이라며 손가락 네 개를 쫙 펴보이는 아이를 볼 때는 머리속이 복잡했다. 제도가 바뀌어서 너 2살이야라고 말하면 얼마나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을지. 혹시 제도가 바뀐다면 우리는 아이에게 암묵적으로 2023년까지 쭉 너는 4살이라고 하자, 라고 가족들끼리 약속했었다. 그 누구보다 나이에 민감한 것은 아이들이란 것을 어른들은 자주 잊어버린다.


한참 입학제도 개정 문제로 시끄러웠다. 대상이 되는 나이의 아이를 둔 부모로서 더 감정이입한 면이 없지않지만, 정부가 아이들을 너무 숫자로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속상하고 걱정이 많다. 1년 3개월씩 구분해서 입학하면 점진적인 제도 도입이라니. 나는 7세 아이를 가져본 적은 아직 없지만, 7세가 되어도 3개월이 큰 숫자가 아닐 수는 없다는 건 안다. 우리 아이 뿐 아니라 어떤 아이들도, 실험적인 제도의 희생양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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