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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Dec 30. 2022

작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

아이가 멋진 장난감을 발견하는 것 못지않게 기뻐하는 것 중 하나는 의외로 아기변기나 아기용 세면대를 발견할 때이다. 우연히 방문한 화장실에서 아주 밝은 목소리로 “왜 작은 변기가 있지?”하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볼때, 아이의 마음을 아직도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얼마 전 갔던 놀이공간에서는 재미있는 놀이기구는 뒷전이고, 높이가 딱 맞게 만들어진 세면대만 족히 열번은 왔다갔다 하면서 손을 씻어대었다.


최근 몇 년간 읽은 책 중 아직도 최고라고 생각하는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작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한 글을 읽지 않았다면, 아이를 대하는 나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서서 무언가 하고 있는 나에게 뭔지 보여달라고 재촉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그저 귀찮고 징징거림으로 생각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작가님 덕분에 나는 “조금만 기다려 줄래? 다 하고 나서 보여줄게”라고 말하고, 준비가 다 된 다음 쪼그려 앉아 아이가 충분히 궁금증을 해소하게 해주는 조금 괜찮은 엄마가 되었다. 아이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 요청을 묵살하였을 때 아이가 느낄 속상함은 적어도 30분은 지속되었을 것이다.


얼마전에는 ktx로 이동하고 현지에서 렌트하는 여행을 하느라, 카시트를 빌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잠깐씩 어른 벨트를 하고 이동하던 적이 있었기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에 없이 안전벨트를 탈출하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와 안전상의 이유로 타협할 수 없는 나는 심각한 갈등에 봉착하고 말았다. 결국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안전벨트를 하고 여행을 마친 아이가 뒤늦게 속상했던 이유를 말하는데, 낮은 의자에 앉아있어서 창문밖 나무도 사람들도 보이지 않아서 속상했다고 했다. 그저 불편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새삼 작은 사람으로 사는 아이의 답답함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나는 부탁하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내가 혼자 찾아내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고 싶어 이렇게 저렇게 노력한다. 아이는 왜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손씻게 들어올려줘’ ‘뭐하는지 보여줘’하는 말에 아무리 내가 흔쾌히 응했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것을 내가 그런 사람이면서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오늘 아이를 위해 3단 책장을 들였다. 3층은 높으니까 엄마 책을 놓으라던 아이가, 자기 스스로도 3층에 손을 올려 책을 넣고 뺄수 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되었다. “여기는 높으니까 엄마가 도와줘” 하다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네?”라며, 텅텅 빈 3층 책장 칸칸마다 자기 책을 놓으며 엄마가 쓰지 못하게 ‘찜’을 해두었다. 오늘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너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보다 조금 키가 작고 조금 느린 친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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