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 갔던 해에는 BTS가 전성기를 시작한 타이밍이라 그렇게 미국에서도 인기일까 조금 궁금했었는데, 그 궁금증은 학기를 시작하는 첫 날 바로 해소되었다. 내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텀블러를 우연히 봤는데 ‘진’의 얼굴이 떡하니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외에도 우리 기수에 아미를 몇 명 만났고, 그정도는 아니지만 BTS를 꽤 알고 좋아하는 아이들은 더 많았다. 한국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팬은 훨씬 더 많아서, 나에게 이거저거 봤다고 한국에서도 인기 많은지 물어보기도 하고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사이트와 앱을 나에게 소개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대부분 아시아계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한 친구는 나에게 “한국인인데 기생충을 안 봤다니 믿을수 없어! 내 인생 최고의 영화인걸!”이라고 말해서, (기생충이 개봉은 했지만 아카데미 수상은 하기 전이었고, 난 한국에서 볼 시간이 없었다.) 마침 현지 극장에 개봉 중인 기생충을 보러 갔다. 미국인들이 가득 찬 극장 안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앉아서, 영어 자막이 달린 한국어 영화를 보는 것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그들이 웃지 않는 몇몇 부분에서도 속으로 웃었지만, 대부분은 그들과 함께 웃었다. 번역이 잘 된 덕분도 있을테고, 봉준호 감독의 유머코드가 만국공통인 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류는 k-pop, k-드라마 뿐이 아니었다. 한국식 고기집인 k-BBQ나 과일소주(한때 우리나라에서 대유행했던 ‘자몽에소주’류)가 인기 있는 것은 알았지만, 꼬북칩이나 말랑카우 매니아들을 만날 줄은 몰랐다. 학교내 상점에서 생각지도 못한 한국 로드샵 화장품 브랜드를 만나고는, 면세점에서 산 해외브랜드로 가득찬 내 화장대가 조금 민망해졌다. 내가 쓰려고 잔뜩 가져간 마스크팩이며 틴트, 네일스티커 같은 것들을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니 그 무엇보다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할로윈때는 우리 집 사탕바구니에 말랑카우와 미니약과를 넣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어느날 우연히 우버를 탄 날, 기사님이 나의 국적을 묻더니 먹방(muk-bang)을 즐겨본다고 했을 때였다. 학교 친구들같은 비교적 어린 세대도 아니고 50대는 넘어보이는 흑인 아저씨와 한국음식을 먹는 유튜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쉬운 점은 정작 내가 먹방을 즐기지 않아서 대화를 제대로 발전시키기 어려웠다는 점이지만.
한류 덕분에 많은 핑계도, 추억도 생겼다. 새해에는 친구들을 초대해 떡국을 먹으면서 BTS의 무대를 함께 감상하고, 한창 인기가 있던 ‘사랑의 불시착’ 마지막 회 합동 상영회를 열어 또 한국 음식들과 함께 현빈-손예진 열애설의 진위여부에 대해 토론했다. 언젠가 BTS 노래 연속재생 및 안무 따라하기 이벤트도 하기로 했는데 실행하지 못해 내심 아쉽다. (물론 노래도 안무도 내가 제일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요즘도 새로운 드라마에서 핫한 배우를 팔로우 하려고 검색하면 ‘친구 ***, ***가 함께 팔로우합니다’라는 안내를 심심치않게 마주하게 된다. 원래도 영화, 드라마, k-pop 모두 좋아하는 나지만, 미국 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아 새삼 더욱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