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홈파티 문화였다. 미드나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오픈하우스 느낌의 자유로운 파티는 나뿐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생소한 형식이라 '정말? 저렇게 한다고?' 싶었다. 내 집을 속속들이 공개하는 부담은 물론이요 누군지 모를 지인의 지인까지 파티에 합류하는 것도 찜찜하고, 마무리 청소는 또 어떻게 할거야.. 생각만 해도 까마득하다.
학기가 시작되고 몇 차례 비공식적인 파티초대 - 라기보다는 공지 - 가 있었지만 막상 가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국식 모임은 정해진 사람들이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는 폐쇄적인 방식인데, 미국 친구들은 그냥 '며칠날 몇시쯤 부터 우리집에서 파티할건데 시간되는 사람 와! 우리집 주소 xxx임!' 이런 식이라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회에서 공식적으로 주최하는 첫 파티는 동기들 대부분이 참석하는 분위기라 나도 슬쩍 따라가보기로 했다. 공식 파티장소는 대관한 곳이지만, 모든 파티 전에는 사전이벤트 형식으로 홈파티가 열리는 게 국룰인듯 했다. 같은 반 동기 3명이 같이 살고 있는 집 주소를 받아 도착해보니, 학교 근처에 이렇게 그럴듯한 아파트가 있었나 싶은 곳의 펜트하우스였다.
집에 도착하니 넓은 거실에 가구가 하나도 없어서 놀랐는데, 이 집에서 파티를 자주 열어서 아예 거실에는 가구를 안샀다고 한다. 대신 작은 DJ 테이블과 삼삼오오 서서 오늘의 컨셉인 80년대 복장을 입고 수다를 떠는 동기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대부분 파티는 BYOB(Bring Your Own Beverage) 이므로 들고온 과일소주(외국 친구들이 정말 좋아한다)를 주방 한쪽에 두고, 가벼운 알콜맛 탄산수 느낌인 White Claw 한 캔을 들고 테라스 쪽으로 나가보았다.
가자마자 낯선 환영멘트와 포옹이 나를 반겨주었다. 한 반에 70명이나 되니 아직 거의 얘기해본 적 없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세상 친한 사이처럼 반가워하고 서로의 의상에 대해 몇마디 나누니 어색함이 그럭저럭 사라졌다.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 도심 저 건너까지 보이는 테라스뷰와 가벼운 알콜 덕분인지, 언제 내가 이런 영어실력과 친화력을 가졌었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대화가 끊기거나 조금 어색해지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친구를 환영하러 가면 되고, 테이블에 앉아있지 않으니 다른 그룹의 대화에 끼어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자리에서 사람들 만나면 쉽게 친해지고 영어도 늘겠다!싶은 의욕이 샘솟았다.
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의 파티에 녹아드는 것은 역시 녹록치 않았다. 한국인이 세상에서 제일 술 열심히 마시는 줄 알았는데, 이 친구들은 술, 특히 독주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어디서 분위기 맞출 정도의 주량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리에 앉아서 물과 안주를 꾸준히 곁들이고 가끔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자리도 자주 비우며 쉴 때 가능한 것이었다. 자리도 테이블도 없는 이 파티에서는 물은 찾아볼 수 없고 안주는 배달피자가 전부였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보드카며 위스키 몇 잔을 내리 들이켰으니 버틸 수 있을리 만무했다. 어느새 눈을 떴더니 해가 중천에, 나는 우리 집 침대에 누워있었다. 파티장소를 가긴 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렴풋이 떠오른 이름 하나, 우리 반의 중국인 친구 제니였다. 같은 반에 있는 몇 안되는 여자 유학생이라 나름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기억은 안나지만 같은 기숙사에 살기도 하는 그녀가 나를 도와준게 틀림없다 싶어 페이스북메신저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둘 다 영어도 페이스북메신저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파티장소 구석에서 나를 주워와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는 어제밤의 자초지종을 대략 알려주었다. 고맙고 민망하기도 한 마음을 어설픈 영어 단어와 낯선 이모티콘으로 전했더니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린 여기 모두 혼자 왔잖아. 그러니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어야 해.”
낯선 언어로 들어서 그런지, 타지에 혼자 누워있는 상황 때문인지. 짧은 문장 하나에 마음이 울컥하는 기분이었다. 한국말로는 그런 말을 뱉어본 적 없지만 나도 그녀와 동조하여 따뜻한 말을 몇마디 더 주고받으며 서로 응원을 전했다. 시차 덕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소통도 잘 되지 않던 긴 시간동안 나의 가족이 되어준 제니와 같은 친구들 덕에, 미국에서의 생활이 외롭지만 많이 슬프지는 않았던 것 같다.
참, 그 후로 어느 파티에서건 그녀와 나는 서로를 살펴보며 곁을 지켰다. 미안하게도 그녀가 나처럼 만취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