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받아들이는 방법

by 아마로네

임신 사실을 알게된 후 어쩐지 컨디션이 훨씬 나빠지는 느낌이어서, 우선 직장에 단축근무를 신청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임신 초기는 불확실성이 크니까 아주 가까운 가족만 알리는 게 좋다고 했는데, 단축근무 제도가 생기고 나니 직장에 되도록 빨리 알려서 단축근무를 시작하는 게 바람직한 일이 되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예사로 넘겼던 제도의 변화들이 새삼 고마웠다. 내 상황이 널리 알려지면서 수많은 시선과 질문들에 노출되기는 했지만. "축하해! 근데 어떻게 해?" 라는 많은 말들에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라고 답한건 긴 대화가 부담스러워서 이기도 하지만,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라 더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나도 정말 모르겠다고요.


대형 뉴스 2건을 전하기 위해 부모님과 주말에 식사약속을 잡았다. 나와 엄마는 원래도 여느 모녀지간처럼 끈끈한 사이는 못 되지만, 얼마전 생애 가장 크게 싸운 후였다. 아빠의 중재로 이럭저럭 화해는 했다지만 앙금은 남아 꽤나 서먹한 상태였다. 어쨌든 직장에도 알린 터에 이런 이야기를 오래 숨길 수도 없으니, 자주 가던 프랜차이즈 부페식당 한 켠에 앉아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은 예상대로 훨씬 더 기뻐하셨고 또한 (당연히) 조금 혼란스러워 하셨다. 앞으로 언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질문에 답을 하다보니, 지금까지 와닿지 않던 상황들이 점차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갑자기 눈물이 뚝뚝 흐르더니 어느새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엄마 어떻게 해? 나 어쩌지?"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은 아마 꽤나 당황하셨을거다. 이 시대의 K-장녀까지는 아니지만 어릴때부터 자주 아프고 손 많이 가는 동생을 둔 첫째 딸인 나는, 매사에 "괜찮아"로 일관하는 '알아서 잘 하는' 딸이었다. 나를 가만히 보던 엄마는 손을 내밀어 내 손을 꼭 잡고,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엄마가 뭐든 다 해줄게. 걱정하지 마."


옆에 있던 아빠도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하셨다. 그 후로도 나는 조금 더 울었지만 마음 속의 짙은 구름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문득 생각했다.


그 후로도 떠나기 전까지 1년간 나는 매일 밤을 고민했다. 내게 온 기회는 포기하는게 맞지 않을까, 내 아이는 괜찮을까, 하고. 하지만 내가 결국 떠난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가지 마라"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내가 미뤄둔 꿈 중 하나라는 것을,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남들은 이기적이라고 할 선택을 하면서도 나 너무 힘들다고 수없이 울고 하소연한 날들을 옆에서 버텨준 내 사람들. 지난 시간동안 나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내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선량한 사람들의 조용한 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