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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Aug 28. 2023

당신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아이가 요즘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을 집에서 써먹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하는 인사방법을 선보이는 날도 있고, 유치원의 규율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제법 선생님처럼 가르치기도 한다. (밥을 먹을 때는 말하지 않고 부지런히 먹으세요!) 며칠 전부터는 ”ㅇㅇㅇ의 기분은 어떠신가요~?“하며 운율이 있는 질문 대답 주고받기에 빠져 무한 반복중이다. 지목을 받은 사람은 ”ㅇㅇㅇ의 기분은 행복합니다 / 화가 납니다 / 슬퍼요.” 중에서 고르고 왜인지를 이야기한 다음, 상대방에게 질문을 되돌려줘야 한다. 아마 유치원에서 일과 시작시간에 하는 아이스브레이킹 방법인 것 같다.


처음엔 우리 집의 독재자가 하라니까 했지만, 하루종일 헤어졌다 만나는 가족이 쓰기에 참 좋은 질문이었다. “유치원에서 재미있었어? 맛있는 것 먹었어?” 같은 질문에 심드렁하게 대답하던 아이는 친구가 새치기를 해서 화가 났고, 좋아하는 친구가 오늘 유치원에 오지 않아서 슬펐고, 좋아하는 반찬이 나와서 행복했다고 신나게 말해주었다. 어김없이 돌아온 질문에 나도 하루를 곰곰이 돌아보게 되었다. 일에 치여 바쁘게 보내다가 꾸역꾸역 퇴근한 것 같은데, 뭐라도 대답해야 해서 열심히 기억을 더듬다보니 ‘어떻게 이걸 잊었지?’ 싶을 정도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더랬다. 아이도 엄마 이야기를 하면 크게 공감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싶어 한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다른 대답을 하라고 해서 ”세 가지 기분밖에 없어? 감정은 아주 다양한거야.“라고 말해보기도 했는데, 막상 떠올리려니 이 세가지 말고는 적절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감정들은 이 세 가지의 범주 내에 있었고, 어떤 감정들은 일상에 쉽게 나타나지는 않는 것들이었다. 우리의 삶이 happy - angry - sad 세 개 단어로 정리할 수 있는 거였다니! 허무하면서도 심플해서 꽤 좋다.


항상 기록하고 싶지만 정제된 글을 써야할 것 같은 기분에 시작이 어려웠는데, 나의 하루도 세 가지 기분일기로 정리하면 쉽게 중요한 일상을 놓치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울지 않고 웃으며 나를 배웅하는 아이를 보며 출근해서 행복했고, 배송오는 줄 알았던 건조기가 취소되서 화가 났고, 음주운전으로 희생당한 9세 아이의 사진을 보며 눈물나게 슬펐다.


참, ‘당신의 기분은 어떠신가요’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엄마는 ㅇㅇ이랑 함께 있어서 행복하지!”라는 말을 절대 잊지 않는 것이다 :) 매일매일 말해도, 매일매일 ‘정말?’하며 확인받는 아이의 미소를 만날 수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 말해도, 언제 들어도 좋은 마법같은 말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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