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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Aug 26. 2023

팔베개

작은 독립의 시작


며칠전부터 갑자기 아이가 내 팔을 찾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전날 팔베개한 팔을 빼지 못한 채로 잠이 들어 다음날 저녁이 되도록 팔이 아프다고 남편에게 몰래 불평했던 그 날부터. 혹시 베어줄까 기대하며 샀지만 1년째 방치되어 있던 토끼모양 분홍색 베개를 베고 아무렇지 않게 잠이 들었다. 잠들 때까지 가슴께에 손을 올려놓으라고 하긴 했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면 팔베개가 아이에게도 편했을 리가 없다. 푹신한 토끼와 달리 울퉁불퉁 딱딱하고 꿈틀대기까지 하는 팔베개를 그래도 고수한 것은 그만큼 내 품에서의 안정감이 아이에게 필요했다는 것이겠지. 팔베개를 하기 어려웠던 더 아기시절에는 내 옷소매에 손을 넣고 품에 꼭 붙어서 잠을 청하곤 했다. 세상 이상한 자세가 되는데도 이리저리 모양을 바꿔가며 손을 꼭 넣고 잠이 들어서 나도 척추가 뒤틀릴 지경이었는데 아이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매일 그런 잠자리를 계속하다보니 어느새 손끝만 다른 사람에게 닿아도 잠을 못 이루던 내가, 밤새 팔이 머리무게에 짓눌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들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잠자리 독립이라니?!


어릴 때부터 혼자 자는걸 좋아했던 나에게 엄마는 종종 ‘너는 엄마랑 자겠다는 말을 한 번도 안하더라? 섭섭하게..‘ 하고 말하곤 했다. 그럴때마다 난 원래 다른 사람이랑 못 자는거 알잖아, 하고 심상하게 답했는데, 식상하게도 그 말을 하던 엄마가 이제야 마음에 걸린다. 나는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쭉 쉽게 잠들지 못하는 스타일의 아이였는데, 어쩐지 한 번도 엄마나 아빠에게 재워달라고 할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다. ‘넌 어릴 때부터 참 독립적인 아이였지’라는 엄마의 말은, 칭찬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아쉬움과 서운함이 묻어있는 거였다는 것을 이제 알것도 같다.


아직은 새벽에 잠이 깨보면 오른쪽 다리는 고양이가 뒷발로 살짝 밀고 있고, 왼쪽 허벅지에는 아이 발이 걸쳐있다. 살짝 자세를 바꾸기도 쉽지 않지만, 잠이 깬 것이 오히려 반가울 만큼 은은한 행복감이 따끈하게 나를 감싸준다. 뒤척대다가 눈을 살짝 뜬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면, 나의 행복감이 내 고양이에게도 전달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면 호러가 된다!)


내 팔 대신 토끼를 택한 아이는 점점 혼자만의 침대, 혼자만의 방, 그리고 언젠가는 다른 집으로 점점 멀어지겠지. 그런 생각이 들 수록 오늘의 행복을 조금 더 곱씹어 본다.


**


오래전에 저장해 둔 글이 있어서 잊지 않으려 발행해둔다.

이제 내 오른쪽은 비어있지만, 아이는 내 팔을 다시 베고 자기 시작했다는 점이 위안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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