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로네 Sep 05. 2023

8월 이모저모


개인적으로는 평온했으나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던, 이상하고 어려운 한 달.





잼버리 파행부터 서이초 사건과 일련의 교권 추락 이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까지 너무 큰 이슈들이 연이어 터져나와 따라가기도 벅찬 한 달이었다. 방사능 방류에도 기사 하나 찾아보기 힘든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지며 무기력증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방사능’이라는 이슈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찬반이 있는 논쟁일 수 있는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대체 어디로 가게 되는건지 슬프고도 무력한 기분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 마저도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 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며칠 전에는 핫딜을 보고 무심결에 아이의 할로윈 의상을 구매하고는, 도착하고 나서야 할로윈 날의 참사가 불과 1년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혼자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1년이 지나는 동안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듯한 그날의 일, 그리고 조용히 잊혀지는 수많은 또 다른 문제들.





내가 이런 우울함에 빠져 있는 한편 아이는 급격히 쓸 수 있는 글자가 늘어나고, 그림과 종이접기에 빠지면서 주말마다 외출을 거부하고 집콕하며 놀기에 열중하고 있다. 주말 이틀을 꽉꽉 채워서 어딘가 가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는 행위가 내 삶의 낙 중 하나였는데, 집에만 있으려니 주말 이틀을 지난 출근길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역시 아이를 위한다고 생각하며 다녔던 거였지만 내 만족이 크지 않았나 싶다.

아이가 쓰고자 하는 글자의 대부분은 가족과 친구의 이름, 그리고 ‘사랑해’.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지 못하는 아이에게 하트를 접어 손에 쥐어주고 출근했더니 그 이후 매일매일 하트를 접어 사랑해를 쓴 다음 가족 한 명 한 명에게 선물하고 있다.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는 아이가 멋지고, 부럽고, 고마운 하루하루. 이리저리 재는 마음, 거절당할 두려움 없이 당당한 저 마음을 오래 지켜주고 싶다.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엄마 집에 계신 할머니를 만난다. 105세를 지나고 있는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지만, 올해부터 많이 쇠약해 지신 것을 여러모로 느끼고 있다. 얼마 전 어느 날엔 내가 아이와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고 ’누가 온거여?‘하며 나를 제대로 못 알아보시는 듯한 말씀을 하셔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엄마가 어느 날엔가 봉숭아 꽃잎을 따 와서 할머니와 아이에게 봉숭아 물을 들여주셨다. ‘어이구 이게 뭐여’ 하면서 껄껄 웃으시는 할머니와 ‘가만히 좀 있어봐요’하는 엄마를 영상으로 남겼다. 언젠가 이 영상을 다시 열어볼 날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저려와서, 언제 잡아도 핫팩처럼 뜨끈뜨끈한 할머니의 커다란 손을 오랜만에 잡아보았다.





매일 퇴근하고 아이 재우고 와인과 넷플릭스를 보며 사라지는 하루하루. 이렇게 살순 없다는 마음을 여러 달 가져왔지만,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 마음으로 밤 독서를 위한 스탠드를 구입했다. 주말에 집에 있을 때도 책을 옆에 두고 아이가 나를 찾지 않는 시간들엔 책을 읽는다. (이건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도 크지만 말이다.) 덕분인지 8월에는 책을 10권 읽었고, 책 읽는 재미도 제법 찾은 기분이 든다. 매일 휴대폰과 게임에만 몰두하던 남편도 나를 보더니 어느 순간 독서의 흐름에 동참하기 시작하여 기분이 좋다. 책을 읽는 것 이외에도 짬만 나면 휴대폰을 열고 볼 거리를 찾기보다, 조금 멍때리고 생각하는 시간을 참아보려 노력중이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