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로네 Aug 29. 2023

고양이의 애교에 빠지면 답이 없다더니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이유


본가가 서울이라 결혼과 함께 부모님과 독립한 우리 부부에게는 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에어컨 맘껏 켜기(덕분에 우리 집은 4월부터 10월까지 에어컨이 풀가동이다. K-부모님은 왜 더위를 타지 않는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반려동물 키우기였다.


우리는 산책하러 나온 강아지를 만날때마다 눈을 떼지 못하는 지독한 동물사랑 커플이었는데, 남편은 그나마 작은 동물들을 키워본 경험이 있었지만 나는 그 흔한 병아리 하나도 키워본 적이 없었다. 매사에 너그러운 편인 나의 아버지는 동물에는 매우 엄격한 편이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도 '동물에 신경쓸 시간에 사람을 더 챙겨야지' '털이 폐에 쌓여서 병 걸린다'와 같은 말을 수도 없이 하셨기 때문이다.


막상 결혼하고 보니 맞벌이 부부가 강아지를 키운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로 바빠서 퇴근하고 밥 챙겨먹고 집안 정리하기도 쉽지 않은데, 매일 산책시키랴 목욕시키랴 배변훈련 같은 것까지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졌다. 해진뒤 공원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커플들이 꽤나 로맨틱하고 여유로워 보였는데, 그들 중 대부분도 반려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떼어 나왔으리라는 것을 실제 반려인들과 얘기해보면서 알았다.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내년에는 강아지 키워볼까!' 하고 말을 꺼낼 때마다 남편은 '매일 텅 빈 집에 혼자 놔둬야 하는데 불쌍하고 미안하잖아.'라지 뭔가. 이 지독하고 고지식한 동물사랑러야- 다 맞는 말이지만 섭섭하기도 했다.


그렇다. 나에게 반려동물은 늘, 당연하게 강아지였다. 신혼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고양이 반려인구가 강아지에 비해서 현저히 적기도 했고, 오랜기간 사회적으로 덧씌워진 이미지 때문에 나도 고양이를 (귀엽지만) 다소 무서운 동물로 인식하고 있었다. 예쁘지만 도도하고 조금 사납고, 반려인을 자기 아래로 생각하고 반기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말이다. 지나가다 길고양이를 만나면 멀어질때까지 살금살금 쫓아가며 구경하는 동물애호가1을 따라다니긴 했지만, 가까이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의 뒤에 숨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서 '그녀석'을 만났다. 적당히 통통한 치즈냥인 그녀석은 넓은 상가 아케이드 공간을 당당히 걷다가, 나를 보자마자 정면으로 토도독 달려오는게 아닌가? 내 종아리에 머리박치기를 하며 이마를 비비는 녀석때문에 난 거의 기도자세로 손을 모으고 얼어붙어 버렸다. 거의 입도 떨어지지 않아 작은 목소리로 "어떡해...."하며 옆에 있던 남편에게 눈길을 보낼 뿐. 급기야 내 발을 베개삼아 누워 뒹굴뒹굴 애교를 부리던 녀석은 한참 후 나에게 간식같은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와... 고양이는 애교가 없는 동물 아니었나?

얼떨떨했지만 그날부터 난 매일 그 아케이드를 두리번거리며 치즈냥을 찾았다. 편의점에서 고양이 간식도 사서 들고 다녀보고, 용기내어 머리를 조금 만져보기도 했다. 길고양이면서 왜 그렇게 털은 보드랍고 좋은 냄새가 나는지!


몇 번 마주치며 알게된 것은 그녀석은 이미 이 동네의 슈퍼스타라는 것이었다. 상가 입구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간이 집을 만들어 밥과 물을 챙겨주고 있었고, 나와 같은 수많은 호구들이 애교에 홀려 간식을 바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돌을 따라다니는 소녀팬처럼 매일 퇴근길 고양이 소식을 남편에게 전하던 어느날, 그녀석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선언했다.


"우리는, 고양이를 키워야겠어!"




+)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의 슈퍼스타는 옆단지로 구역을 옮겨가서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계시다고 한다. 얼마나 걱정했다구!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를 잃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