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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Aug 31. 2023

입양 첫 날, 고양이가 없어졌다?!

제법 험난했던 우리 집에서의 첫 하루


이동장 안에서 숨죽인 아기고양이를 데려왔지만 한 가족이 되는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이동장을 거실 구석에 놓고 문을 열어뒀지만, 이동장 구석에서 얼굴은 커녕 목소리도 들려주지 않았다. 고양이는 장소에 예민한 동물이라 충분히 시간을 줘야한다고 들은 지라, 우리는 소파에 앉아 곁눈질로 아직도 나오지 않았는지 몰래 확인만 할 뿐이었다.


"거기 있는거 맞지? 자는거 아냐?"

"아니야. 그냥 웅크리고 있어."


바로 신나게 놀지는 않더라도 밥과 물은 먹어야 할텐데... 이동장에서 한 발짝만 나와도 물을 마실 수 있게 바로 옆에 물그릇을 놓아두었지만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남편은 먼저 자러 들어가고, 올빼미인 나 혼자 어두운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작고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는게 보였다! 외마디 비명을 지를 뻔 한걸 어렵게 참으며 작은 털뭉치가 물을 촙촙 마시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작은 소리가 얼마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해 주던지.



나와서 물 한모금 마셨더니 조금 용기가 생겼는지, 작은 고양이는 소파아래 내 발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소파 위를 올라오고 싶은데 아직 점프를 잘 못해서 앞발만 소파위에 올리고 '야옹'이 아닌 '삐용삐용' 소리를 내는 삐약이를 잠시 보며 망설이다가, 살짝 들어 위로 올려주었다. 털에 가려져있던 아이의 몸은 예상보다 더 작고 따뜻했다.


하지만 안심하긴 아직 일렀다. 다음 날 아침 이동장에서 푹 잠든 고양이와 화장실에 다녀온 흔적을 보고 회사를 허겁지겁 다녀왔는데, 돌아오니 아이가 어디에도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름도 없어서 '고양아~ 어딨니~' 하면서 방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현관문을 늦게 닫았나? 창문이 열려있는 곳이 있었나? 어디 갇혀있을 만한 장롱이 있나? 집사 2일차에 벌써 고양이를 잃어버리다니.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아직 오지 않은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고 있는데, 어디선가 '삐용'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부엌과 다용도실 쪽인 것 같았는데 아무리 모든 문을 열고 닫아도 보이지 않던 차에, 혹시...?하고 세탁기 근처로 가자 조금 더 정확하게 '삐용' 소리가 들렸다. 작은 키로 까치발을 해서 세탁기와 벽면 사이 틈을 보니 작고 검은 형체가 보였다. 정말 작은 틈인데 저길 어떻게 들어갔는지! 고양이 액체설 말로만 들었지만 이 정도로 모든 곳에 들어갈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세탁기 뒤는 꽤 넓어보이지만 들어가는 입구인 세탁기 옆면과 벽 사이는 정말 좁았다)


일단 발견은 했지만 꺼내는 것이 난제. 남편은 오려면 멀었고 아이는 언제부터 갇혀있었을 지 모를 일이니 빨리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힘을 끌어모아 세탁기를 앞으로 옆으로 조금씩 당겼더니, 땀이 뻘뻘 나고 옷은 먼지 투성이가 되었지만 한참만에 아이가 스스로 나올만큼의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었다.


탈출한 고양이는 얼른 나에게 안기..지는 않았지만, 훨씬 내 가까이를 지나다니며 달라진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를 구해준 걸 보니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아!'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덕분에 생각보다는 빠른 시간에 우리 집에 적응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또 하나 다행인 점은 이후에 다시는 세탁기 뒤로는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시 똑똑한 고양이!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들어갈 수 없는 크기로 커져버렸긴 하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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