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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Sep 04. 2023

사랑하는 만큼 많아지는 이름들

너의 이름을 처음 부른 날


고양이가 집에 온 지 일주일이 넘어서도 아직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 평소에도 결정을 잘 못하는 편인데, 한 번 지어주면 계속 불러줄 이름이라니 더욱 신중해졌다. 너무 흔한 이름도 싫고, 그렇다고 부르기 어렵거나 고양이가 알아듣기 복잡한 긴 이름은 안되고… 하루종일 이런저런 이름을 수없이 떠올리다 지우다 반복했다.


대부분의 결정을 쉽게 하는 편이라 내가 이렇게 갈팡질팡할 때 정리하는 쪽인 남편이 ”망고 어때 망고?!” 하고 지나갔지만, 이번엔 남편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며칠 전 예능에서 본 다니엘 헤니의 반려견 ’망고‘가 떠올라 그냥 던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름이 망고라면 적어도 노랑 비슷한 컬러여야 하지 않나? 골든리트리버 종인(듯한) 예능 속 망고와 달리 우리 고양이는 노오란 망고와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짙은 회색이란 말이다.


그러던 중 예방접종을 위해 첫 동물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날이 닥치고 말았다. 사람 아기처럼 고양이도 태어난 후 몇 달간은 몇 차에 걸쳐서 예방접종을 맞아야 하는데, 생후 첫 예방접종은 마쳤지만 두 번째 부터는 우리 몫이었다. 사실은 집사가 될 운명이었는지, 우리 집 바로 길 건너편에 있던 동물병원은 고양이 카페에서 평이 꽤 좋은 곳이었다.


그래도 입양올 때 차 탄 것 빼고는 집 밖을 벗어난 적 없는 아기고양이의 외출은 쉽지 않았다. 그 작은 몸에서 얼마나 큰 ’아오오옹‘ 소리가 계속 나는지, 엘리베이터에서도, 신호를 기다리는 횡단보도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식은땀을 잔뜩 흘렸다. 대기실 소파에 겨우 이동장을 내려놓고 접수대로 가서 “아기 고양이 2차 접종 하러 왔어요.” 했더니 간호사분이 바로 물으신다.


“네. 처음 오셨죠? 아이 이름이 뭐죠?”


아차, 어느 병원을 가도 보호자가 누구든 진료받을 사람의 인적사항을 적는 게 당연하거늘, 동물이라고 이름도 없이 병원에 올 생각을 했다니. 당황한 내 등 뒤로 다른 동물 보호자가 접수를 하러 다가오는게 느껴지고, 나는 급한 마음으로 머리 속에 떠오른 그 이름을 내뱉고 말았던 것이다.


“망고에요.“

“네, 생년월일 알려주세요. 수첩 만들어 드릴게요.”


정신을 차려보니 ‘망고’라고 크게 적힌 고양이 얼굴의 수첩이 내 손에 들려있었다. 병원에 올 때마다 이걸 들고 와서 건강상태와 예방접종 기록을 관리하면 된다고 한다. 하.. 이동장 옆에 앉아있던 남편은 ‘망고 싫다더니’ 하며 킬킬 웃고있다.


어쨌든 너무 겁쟁이여서 반항할 용기도 없이 선생님 품에서 얼어있던 아기 고양이는 이름을 얻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매번 고양아 하다가 망고야, 하고 몇 번 불러봤더니, 병원 다녀와서 새침하게 웅크리고 있던 녀석이 ‘나 부르는 건가?’하고 살짝 쳐다본다. 그래, 색깔이 어떠면 어때. 입에 잘 붙고 잘 알아들으면 되지.

(나 부른고양?)




그리고 지난 6년간 망고, 맹고, 망돌이, 망망, 망고양이, 망도령, 망고아저씨, 망고쓰.. 엉망진창 마음대로 불러도, 항상 망고는 귀를 쫑긋하며 나를 바라봐주었다. (물론 댕댕이들처럼 달려오고 그러지는 않는다.) 유행하는 컨텐츠가 있으면 망고의 이름에 붙여 새 별명으로 불러보고, 새로 만드는 아이디는 망고를 넣어서 지었다.


아기때부터 내가 부르는 '망고야~'를 제일 많이 들었던 아이는 ‘엄마’ ‘아빠’ 보다 ‘망고’를 더 그럴듯한 발음으로 먼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망고가 '김망고'가 된 것은 사실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최근 가족들 이름을 쓸 줄 알게 된 아이가 본인과 아빠 이름이 같은 글자로 시작한다는 걸 알고 ‘그럼 망고는 엄마랑 똑같이 김망고야!’ 하고 정해준 것이다.




얼마 전 아이와 빙수를 먹으러 갔다. 망고빙수를 먹자고 하니 아이가 ”난 망고 싫은데!“하더니, 몇 초 후 망고가 어디서 듣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재빨리 덧붙인다.

“먹는 망고가 싫고, 고양이 망고는 좋아!”

“그렇구나. 엄마는 먹는 망고도 좋고, 고양이 망고도 좋은데!“

“김망고 보고싶다.”

“엄마도, 엄마도 그래.”


네가 없어도 우리는 너의 이름을 부르고 있어.

그러니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더라도, ‘망고야’ 하고 부르면 꼭 돌아봐주기로 해.




(안녕 나 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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