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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Sep 07. 2023

날 두고 아무데도 가지 말라구!

분리불안 집사의 안절부절 여행기


망고가 우리 집에 온 지 열흘째, 이럭저럭 적응하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위기가 생겼다. 입양 훨씬 전부터 예약해놓았던 제주 여행을 취소할 수 없어, 아기고양이만 집에 두고 떠나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데려올 때만 해도 '고양이는 혼자 잘 있는다던데?' 하는 이야기를 믿고 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막상 이 자그만 아이를 며칠 혼자 두어도 될 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사실 매일 집사들이 출근하면 혼자 집을 지키는 고양이이긴 하지만, 며칠간의 동거만으로도 '고양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는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출근할 때는 현관까지 오종종 따라와서 현관문이 닫힐 때까지 까만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퇴근하고 현관문이 열리기도 전에 저 멀리서 작은 발로 와다다 달려오는 털뭉치. 하지만 바로 앞 동물병원도 가지 못하는 고양이를 데리고 여행을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디가냥?)


어느새 떠나는 날, 사료 그릇을 두개 꺼내 가득 채우고, 물그릇도 추가로 배치하고, 화장실도 다시 치우고, 심심할 때 찾아먹으라고 집안 구석구석에 보물찾기 하듯 간식들도 숨겨놓았다. 아침부터 집사들이 왜이리 분주한지 알리 없는 망고를 뒤로 하고 허둥지둥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발걸음이 어찌나 무거운지. 제주의 날씨는 어느 때보다 좋았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숙소도 만족스러웠지만, 남편과 나누는 이야기는 '망고 밥 더 놓고 올 걸 그랬나?' '다음엔 화장실을 하나 더 살까봐' 같은 것들 뿐이었다.


저녁 즈음 숙소에 와서 쉬고 있는데, 집에서 나오는 길에 망고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매일 내가 나갈 때마다 문 앞에서 배웅하던 아이였는데? 남편에게 물어보니 역시 보지 못한 것 같다고 하자, 나는 '혹시 방문이 닫혀 갇혀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첫 날의 세탁기 사건 트라우마도 있고, 아직 망고와의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 그 이후에도 방문이나 옷장 문을 닫다가 망고가 잠깐씩 갇히는 일이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주변에 마땅히 부탁할 지인도 없었던 지라 고민 끝에 나의 호적메이트,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이가 나쁜 건 전혀 아니지만 여느 남매처럼 특별한 일 - 엄마 생신이라던가 - 없이는 절대 연락하지 않는 사이라 의아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심?"하는 동생에게 인생 최고로 간곡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집에 잠깐 가봐달라고 부탁했다.


'누나가 이런 부탁을 하고, 별일이 다 있다'며 녀석은 얼마 후 사진을 몇 개 보내왔다. 복도를 전속력으로 뛰어오는 회색 물체의 흔적만 찍힌 사진과, 낯선 이의 발냄새를 맡고 있는 호기심많은 쪼꼬미의 사진. 갇혀있는 것도 아니었고, 잘 먹고 잘 놀고 있다는 얘기에 마음이 놓여 눈물이 고일 지경이었다.


어느새 돌아오는 날, 문을 열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온 망고는 할 말이 많다는 듯 '아오옹' 울어대며 졸졸 따라오더니, 소파에 앉은 나와 남편 팔을 번갈아가며 꼭 껴안고 놓지 않았다. 이제 어디에도 가지 말라고 옆에 있으라는 듯. 급기야 그대로 잠들어버린 덕분에 팔은 저리고 짐은 하나도 풀지 못해 엉망이었지만, 제주의 그 어떤 풍경과 맛집에서도 없었던 행복이 여기에 있었다.


(절대 안놔줘!)


그리고 그 날부터 망고는 모든 집사들의 로망, '무릎냥이'로 다시 태어났다. 아가 때는 내 팔에 매달리거나 무릎에 앉아있기를 좋아하고, 성묘가 되어서는 내 옆자리에 앉아 은근슬쩍 엉덩이를 붙이거나 팔이나 꼬리를 살짝 걸치기를 즐겼다. 발바닥 젤리의 따뜻함이 팔에 느껴질때 얼마나 귀엽고 웃긴지!


항상 나눠줄 시간이 부족한 집사들을 늘 기다려 주었던, 나의 다정한 고양이가 오늘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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