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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Sep 20. 2023

영원한 나의 세살 아기

묘생 첫 수술대에 오르다


마냥 깨발랄 아깽이일것만 같던 망고에게도 운명의 그 날은 오고 말았다. 중.성.화.수.술.


고양이를 키우기 전엔 중성화 수술을 한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꼭 해야하나 싶었지만, 알면 알수록 집고양이는 물론이고 길고양이들에게도 건강한 삶을 위해 중성화 수술은 필수이다. 보통 생후 6-8개월 정도에는 컨디션에 맞춰 중성화 수술을 고려하게 되는데, 그 전에 발정기가 시작되면 그 동안에는 수술을 할 수 없으니 마냥 미루면 곤란해질 수 있다. 망고는 남아라 비교적 수술이 어렵지 않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을 결정하는 마음이 쉽지는 않았다.


직장인인 집사들이 수술 후 최대한 오래 지켜봐 줄 수 있도록 토요일 오전 첫 타임으로 수술을 잡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전혀 모르고 오늘따라 쉽게 잡혀 이동장에 들어가는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집 앞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컨디션이 좋아서 수술에 무리는 없다며, 수술 후 깨어날 때까지 몇 시간은 걸리니 일단 귀가했다가 연락이 오면 데려가라고 하셨다. 혼자 병원에 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던지.


괜히 카페 후기를 찾아봤다가 회복하는 데에 고생한 후기들을 잔뜩 읽고 마음만 심난해져 버렸다. 집안을 왔다갔다 안절부절하며 연락만 기다리다, ‘수술 무사히 마쳤다’는 연락에 미리 준비해 둔 넥카라를 집어들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눈은 겨우 뜨고있지만 온 몸이 축 쳐져있는 작은 몸에 커다란 플라스틱 넥카라를 낀 모습이 낯설어 눈물이 고였다. 꼭 안아서 데려가고 싶었지만 야외에서는 어떻게 변할 지 몰라 이동장에 잘 넣어 데려가야 하는 상황이 유난히 더 슬펐다.


(베개가 편안하다냥)


집에 돌아온 망고는 우리가 준비한 조금 부드러운 천 소재 넥카라를 베개삼아 바닥 한 쪽에서 쓰러지듯 누워 한참을 더 잤다. 평소에는 절대 만지지 못하게 하는 발바닥이며 배를 쓸어보아도 꿈쩍도 안하는, 넥카라 덕분에 더 작아보이는 털뭉치 녀석이 너무 짠했다. ’고생 많았어. 힘들었지? 조금만 참으면 점점 나아질거야.‘ 하고 속삭이며 한참을 쓰다듬어 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저녁때 쯤 깨어난 망고는 갑자기 맹렬히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뛰어놀기 시작했다..?!

월령대비 덩치가 큰 데다 특히 허리가 긴 탓에 천 넥카라로는 수술부위를 핥는 것을 막을 수 없어서 병원에서 받은 플라스틱과 천 넥카라를 이중으로 달아줬는데도, 그 커다란 머리를 흔들면서 온 집안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스크래처보다 사랑하는 우리 집 소파도 열심히 긁어댔다. 이날 찍어 둔 이상한 걸음걸이는 오랫동안 우리의 웃음버튼이 되었다. 몇 개월간 보면서 천성이 튼튼한 아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회복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


(나는 용맹한 사자다 어흥!)


수술 회복을 겪으며 비로소 이 작은 생명이 지난 몇 달간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가 되었는지 깨달았다. '병원을 잘 선택한게 맞을까? 이렇게 간호해주면 되나?' 끊임없이 검색하고 고민하면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내 결정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존재에 대한 책임감도 새삼 느껴졌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말도 못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3살 아기를 10년 이상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성화 후에 가장 많이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인 왕성한 식욕으로 망고는 아기의 모습에서 급격히 성묘가 되어갔지만, 우리에겐 영원히 아기일 내 고양이. 서툰 집사를 늘 믿고 의지해줘서 고마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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