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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Oct 13. 2023

산타 고양이와 함께 맞이하는 새해


나는 예전부터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바로 트리를 꺼내고 캐롤을 매일 들으며, 크리스마스에 어떤 케익을 사고 어떻게 보낼까 12월 한 달을 고민하며 보냈다. 빨강 코트와 트리 일러스트의 청록색 양말을 겨우내 애용하고, 루돌프 코가 반짝이는 네일아트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고양이와 함께 하는 첫 연말,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우리 집의 전통을 이제는 이어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트리를 휘감는 하늘하늘한 리본들, 바람에 흔들리면 영롱한 소리가 나는 반짝이는 구슬들, 씹으면 바스락 소리가 나는 나무잎..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 자체가 고양이의 취향을 저격하는 거대한 장난감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선반 위에 놓일 정도인 미니 트리를 살며시 꺼내놓아 보았다. 새로운 것을 보면 무조건 검사해야 하는 망고가 재빨리 올라와서 냄새를 맡더니, 아니나다를까 조금씩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찰나의 사진만 남기고 미니 트리는 빛을 본지 약 3분만에 리빙박스에 봉인되어야 했다.


(씹는 맛이 좋구먼 허허)


그렇다면 망고가 망가뜨릴 수 없을 만큼 높이 걸어두는 장식은 어떨까? 침실 문에 리스를 달아두었더니 손이 닿을 때까지 방문 아래에서 점프하다 부딪히는 소리에 잠을 설쳐야 했고, 거실 벽에 다는 가랜드는 다음 날 아침 망고의 아지트에서 이빨 자국을 가득 남긴 채 발견되었다. 꽤나 멀리 있던 CD장 위 액자가 넘어진 것을 보니, 이 곳을 도약대로 삼아 뛰어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래도 내가 고양이를 너무 과소평가 한 것 같다. (쓰다 보니 이 모든 장식품을 소장하고 있었던 내가 더 놀랍다.)


집 장식은 포기했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로망이 있었다. 멍집사들이 귀여운 코스튬을 입혀 반려견들을 자랑하는 사진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하지만 고양이들은 대체적으로 무언가 걸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망고는 특히 싫어해서 이미 모자, 옷, 스카프 등 수많은 용품들이 사진 찍을 새도 없이 서랍장에 처박혔지만, 포기를 모르는 집사는 귀여운 산타 망토를 또 사고 말았다. 이번엔 그래도 몸을 조이지 않게 걸쳐지는 디자인이라 그런지 약 5분 정도..는 참아주는 아량을 보여준 고양이님께 감사를.


(하.. 냥생 힘들다..)


이 날 이후 이 옷도 서랍에서 다시는 나오지 못했지만, 얼마 후부터 스*우 등 사진 앱에서 반려동물을 찍으면 머리띠나 모자를 쓴 것처럼 만들어 주는 필터들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나처럼 귀여운 사진을 남기고 싶은 로망은 많지만 주인님이 협조를 안해줘서 서글픈 집사들이 많았음에 틀림없다.


반짝이는 트리는 없어도, 내 옆을 지키는 털뭉치와 캐롤을 함께 듣고 새해 카운트다운을 듣는 저녁은 그 어떤 연말보다 포근했다.

매년 가족과 지인들의 건강을 소원하지만, 특별히 이번엔 내 곁에 찾아온 작은 친구의 행복과 안녕을 간절히 마음에 품었던 새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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