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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Nov 18. 2023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그래도 삶은 계속되니까


부쩍 추워진 날씨에 긴팔 잠옷을 꺼냈다. 여름에 우리 집에 설치된 건조기에 들어갈 기회가 없었던 옷들인지라, 지난 봄에 망고와 함께 뒹굴며 잔뜩 묻은 털들이 새삼 눈에 띈다. 망고가 떠난지 이제 5개월. 집안 구석진 곳에서 종종 발견되던 털뭉치들도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최근에는 필라테스 선생님의 권유로 폼롤러와 요가매트를 구매해서 아이가 잠든 후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망고가 깨물기 좋아하는 말랑한 소재라 그전에는 집에 들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우리집 크록스와 슬리퍼에는 망고 이빨 자국이 다 몇개씩은 남아 있으니 말이다. 꺼내들기만 하면 자기 장난감인줄 알고 달려드는 망고 탓에 봉인되어 있던 닌텐도 링피트도 창고에서 꺼내올 때가 되었다.


오늘은 병이 예뻐 화장대에 전시만 해두었던 향수를 뿌려봤다. 선물은 받았지만 거의 쓰지 못했는데 가을에 어울리는 은은한 향이었다. 새로 꺼낸 디퓨저 덕에 욕실도 상쾌해졌다. 고양이에게 해로울 수 있다고 해서 다 그만두었지만, 이전에는 새로운 향을 발견하고 사용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최근 망고의 소식을 물어보는 몇몇 지인에게 그간의 사정을 짧게 털어놓았다. 눈물을 삼키며 말했지만 다행히 대부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 자기 일처럼 함께 위로해주었다. 언젠가 찾아올 이별에 대한 불안감, 그 무게를 그들은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한 친구가 ’펫로스는 결국 다른 동물을 다시 입양해야 극복되더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남편에게 고양이를 다시 키울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언젠가는 다시 키울거 같은데, 지금은 아니야.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

다행히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물론 털에서 해방되고, 폼롤러와 향수를 사용할 수 있는 지금이 편해서는 아니지만 말이다.


망고와 6년을 살았지만, 돌아보니 온전히 내 시간을 들여 아끼고 함께해 준 건 첫 1년이 전부였다. 그 후 나는 임신부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외국으로 떠나고, 그리고 또 다른 일들로 늘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말하지만 조금은 핑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 고양이는 늘, 묵묵히 나를 기다렸다. 아이를 재우고 한밤중에 겨우 소파에 멍하니 앉은 내 옆에 가만히 다가와 옆구리를 대고 앉은 내 고양이의 머리와 등을 만져주는 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던 전부였다. 또 다른 고양이가 나에게 온다면, 적어도 지금은 또 다시 외로운 고양이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굳이 극복하지 않으려 한다. 언제나 나를 기다렸던 망고처럼, 꼭꼭 숨겨진 추억을 하나씩 더 발견하길 기다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하며, 슬퍼하며 또 웃으면서 살아보려고 한다. 집사를 기다리는 데 도가 튼 내 고양이도,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또 언제나처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우리 집사가 어디쯤 왔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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