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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로네 Nov 19. 2023

하마터면 모를뻔한 내 고양이의 화장실 사정

방광염 탈출 대작전


고양이가 키우기 쉬운 동물이라고 흔히 생각되는 이유 중 하나는 화장실이 아닐까 싶다.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강아지는 배변훈련도 필요하고 실외배변을 하는 경우도 많은 반면, 고양이는 적절한 화장실만 마련해주면 특별한 교육없이도 찾아가서 볼일을 보고 뒤처리도 알아서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집사는 모래로 덮어놓은 것들을 치워 화장실을 깨끗이 유지해주기만 하면 된다.


물론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들의 화장실은 넓은 통에 '벤토'라고 불리는 모래를 넉넉히 담아두는 형태인데, 고양이들이 드나들며 발에 묻은 모래가 집안에 돌아다녀 일명 집안 '사막화'를 일으킨다. 아무리 청소한다고 해도 발에 자잘한 모래가 밟히는 것을 완전히 피하긴 어렵다.


하지만 나는 망고와 사는 1년간 사막화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망고를 입양할 즈음 런칭 홍보가 한창이던 유O참 화장실과 모래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집사들이 사용하는 두부모래와 비슷하게 자갈정도의 입자를 가진 이 모래는 발에 묻어나오는 일도 적고, 바닥에 굴러다녀도 주워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편했다.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고양이도 있었지만, 망고는 처음부터 이 화장실을 써서 그런지 별 탈 없이 이용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며칠 망고의 소변양이 묘하게 줄어든 것 같다고 느끼던 차였다. 이 화장실은 아래쪽에 패드를 깔아 반려묘의 소변색을 확인하여 건강을 체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그날의 패드는 은은한 핑크색을 띄는 작은 점만 찍혀 있었다.


"이상해. 망고가 화장실을 잘 못가는 것 같아."

"그래? 내일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화장실을 못가서 슬픈 고영)


갸우뚱하며 검색을 시작하자마자 나와 남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사실 고양이들 - 특히 남아의 경우 - 에게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가 방광질환이라는 것이다. 잘못하면 몇 시간 만에도 고양이별로 떠날 수 있다는 글에 마감 직전인 동물병원에 고양이를 들쳐업고 달려갔다.


증상을 듣고 찍어본 망고의 방광은 온통 하얀 물질로 가득차 있었다. 슬러지라고 불리는 결정체는 물을 잘 마시지 않고 소변도 참는 고양이들에게서 흔하게 생기며, 심해지면 요도를 막아 응급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한다. 초음파를 보면서 수의사님이 한 첫 질문은 이랬다.


"두부모래 사용하시죠?"

"네.. 그 비슷한 거 쓰는데.."

"일단 화장실 벤토로 바꾸시고요. 유리너리 사료 먹으면서 지켜보시죠."


많은 고양이들이 고양이의 본능에 적합한 모래가 아닌, 밟는 느낌도 불편하고 배변한 것을 잘 숨길수도 없는 두부모래를 사용하기 싫어서 화장실을 최대한 참고 적게 가다가 방광염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내내 잘 쓰다가 왜..'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늦게까지 여는 마트를 들러 최대한 큰 화장실과 부드러운 벤토모래를 구매해왔다.


새로운 모래를 세팅하고 겨우 만 하루 지나고서 바로 깨달았다. 망고는 내내 잘 썼던 게 아니라, 내내 참고 있었다는 것을. 유리너리 사료 덕분이기도 하지만 하루에 1-2번이었던 화장실 횟수가 두 배는 늘었던 것이다. 불편한 걸 참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 순간 시그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짜고 기름져서 물을 많이 먹게 한다는, 그래서 맛있는 유리너리 사료를 열심히 먹은 덕분인지 망고는 슬러지없이 깨끗한 방광으로 오래지 않아 돌아왔다. 사료를 열심히 먹어서 살도 오른 탓에 더욱 행복해보이는 고양이가 되었다. 그리고 사막화 현상도 화장실을 현관쪽에 두고 앞에 매트 등을 잘 깔아놓으니 견딜만 했다. 다 생각하면 방법이 있는데, 사람 입장에서 편한 방법만 생각했던 것 같아 새삼 미안했다.


야생의 본능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고양이들은 아픈 것을 절대 티내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야생에서 병들고 약한 존재란 곧 공격의 타겟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우리의 관심이, 관찰이.

(너의 평안한 모습이 최고의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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