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 임산부의 화상 인터뷰

아기 엄마가 아닌 나로서의 나

by 아마로네

MBA 진학을 위한 마지막 관문은 인터뷰였다. 지원한 서류들을 검토한 후 학교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면 인터뷰 방법과 일정을 정할 수 있다. 캠퍼스 방문은 하기 어려우니 주로 skype을 통한 화상인터뷰로 진행되었다. 시차가 있지만 현지 시간으로 오후 늦은 시간을 선택하면 한국에서는 오전 일찍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일정이었다. 서류 제출 후 금방 인터뷰 요청이 온 학교도 있지만, 대부분은 2달 가까이 시간이 걸려서 인터뷰 일정은 출산예정일이 있는 2월에 집중되었다. 1월에 대부분의 인터뷰를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던 나의 계산과는 달라져서 하루하루 초조해졌다. 인터뷰어가 한국에 방문해 대면 인터뷰를 한다는 곳도 있었는데, 방문 일자가 정확히 출산예정일에 겹쳐 양해를 구하고 화상인터뷰로 바꾸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으로 zoom에 익숙해진 모두가 느끼겠지만, 화상미팅의 최대 장점은 어깨까지만 보인다는 점이다. 편한 차림으로 인터뷰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지만, 무엇보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만삭의 배를 처음부터 인터뷰어에게 보여주지 않고 인터뷰에 집중할 수 있는 점도 편안했다. 어디선가 임산부가 되면 익명성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라는 말을 읽었는데, 배가 불러올 수록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어디에서든 나는 '임산부'로 존재하고 주목받았고, 임산부니까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들이 이제 그만 듣고 싶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든 인터뷰에서 내가 임산부이며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게 되었다. 딱딱한 인터뷰형 질문 못지 않게 small talk나 마지막 인터뷰어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 시간 또한 인터뷰어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중요하다. 내 일상을 이야기 하다보니 내 일상의 모든 부분을 점거하고 있는 작은 아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학교마다 인터뷰어는 입학위원회 직원, 졸업생, 재학생 등 다양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누구보다 기뻐하고, 축하하고, 즐거워했다. 조금 어색하기도 했던 인터뷰 분위기가 항상 편안하고 부드럽게 바뀌었다. 그들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 언제 출산인지, 이름은 정했는지와 같은 것이었다. 어떤 인터뷰어는 인터뷰 하는 동안 출산하는 일은 생기지 않길 바란다는 농담을 하며, 이전에 화상인터뷰를 하다 상대방이 지진이 나서 깜짝 놀란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었다. 한국에서 만삭 임산부가 인터뷰를 한다면 "아이를 낳으면 학업은 어떻게 마칠 생각이죠?"와 같은 질문이 가장 먼저 나오지 않았을까? 임산부인 내 상황이 인터뷰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걱정을 했었는데, 좋은 영향이 있으면 있었지 나쁜 영향은 없는 것 같았다.


마지막 인터뷰는 3월 초에 정해졌다. 조리원에서 인터뷰를 하면 다행인데, 출산 당일이나 다음날이 걸리면 어떻게 하지? 초췌한 몰골에 병원복을 입고 인터뷰를 하는 상상을 했다. 확실한 날짜를 알면 인터뷰를 미뤄달라고 할텐데 그러기도 어려웠다. 그 와중에 아이는 예정일을 훌쩍 넘겨서도 아무 반응이 없었고, 마지막 인터뷰를 마친 바로 다음 날, 예정일을 약 12일 지나 태어났다. (내가 다니던 산부인과는 가능한 유도분만을 권유하지 않는 편이라, 42주가 되는 날 유도분만을 하기로 예약했었다.) 마치 엄마를 기다려준 듯한 아이가 정말 신기하고 고마웠다.


조리원에 누워 첫 합격 전화를 받았다. 매일 먹는 미역국도 달고, 쏟아지는 수유콜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이 작은 아기의 엄마이지만 또한 나로서 존재하고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나를 출산에서 금방 회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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