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수출영업 이야기
작은 키, 긴 얼굴, 깡마른 체구지만 딱 맞는 셔츠, 그 당시 캄보디아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엉덩이까지 내려온 청바지...내가 처음 본 이 바이어의 모습이었다. 한국적인 사고로는 볼품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약간 수줍지만 초면에 활짝 웃는 모습이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어떻게 나를 찾아 왔냐라고 물어보니 대사관에서 번호를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직접 찾아 온 것으로 보아 적극적인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어려 보여 물어보니 이제 대학생이라고 해서 학생이 사업을 시작하니 대단하다고 칭찬하니, 공부도 하면서 아버지와 같이 지방도시에서 한국 중고차 부품 유통 사업을 하고 있단다. 수도인 프놈펜 수입상들에게 부품을 사와서 지방에서 팔고 있는데 최근 부품 수요는 많지만 물건 구하기는 힘들고 경쟁이 심해진 바람에 마진도 줄어서 직접 수입하고 싶다고 하며 한국 업체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다행이 비슷한 경험이 있고 아는 한국 기업도 있어서, 도와줄 요량으로 관심 품목 리스트를 달라고 하니 바로 주지는 못하고 그 다음 날에 A4용지에 인쇄한 품목 리스트를 가지고 왔다.
그냥 메일로 보내어도 될 것을 직접 가지고 와서 눈앞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 순둥(?)한 친구가 사업을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영업 마인드가 대단한 친구였다. 메일만 보냈으면 바빠서 못 볼 수도 있었고 리스트 전달한다는 핑계로 상대방도 한 번 더 만나고, 만약 의도했다면 사업가의 자질이 충분한 것이다.
수출입에 대해 문의하기에, 현지 대형 포워딩 업체를 몇 개 소개해 주면서 최대한 많은 곳으로부터 물류 견적을 받아보라고 했다. 현지 포워딩 업체도 현지인에게 바가지 씌우니 조심하라고 일러주면서.
확보한 관심 품목 리스트를 토대로 아는 폐차장 몇 군데에 바이어 정보를 주면서 연결해줬다. 폐차장 하나가 다 공급할 수 있는 품목과 물량이 아니고 폐차장마다 주로 취급하는 부품이 다른 경우가 많아서였다.
대략적인 가격정보만 몇 번 메일을 주고받더니 일이 잘 진행되질 않았다. 수많은 국가의 바이어를 상대하고 폐차장에 가만히 있어도 바이어들이 현장에서 한국 돈으로 부품과 차를 그 자리에서 바로 사가는 시기여서인지 초짜가 부품을 사겠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업체는 드물었다.
선금을 먼저 주면 부품을 모아놓고 컨테이너를 채울 만큼 물량이 되었을 때 한국에 와서 잔금을 지불하고 컨테이너를 선적하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는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업체에 선금을 준다는 건 바이어에게도 부담이었다.
나도 바이어도 한국에 가서 직접 폐차장들을 만나고 부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바이어에게 선뜻 초청장을 써줄 한국 업체는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다행이 한국 Kotra본사에서 주최하는 수출상담회가 있었고 중고차 및 부품 바이어도 참가가 가능하다고해서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보냈다.
내가 소개한 업체들과 잘 만날 수 있게 카카오톡을 설치하게하고 바이어가 한국에 있는 중간 중간 연락을 도와주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 것이다. 몇 주 뒤 소개한 폐차장과 품목이 맞아 떨어져서 거래를 트고 왔다고 정말 고맙다고 선물을 들고 무역관에 찾아왔다. 받기에는 너무 큰 선물이라 정중히 사양하고 돌려보내고, 다른 한국 업체도 많이 있으니 자주 만나자고 했다.
그 후 공항이나 무역관에서 종종 만났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컨테이너를 하는 정도였는데, 2~3년 만에 3~4컨테이너를 수입한다고 했다. 다른 바이어나 한국 폐차장으로부터 소식을 자주 듣게 되었는데 그분들 말로는 캄보디아 중고차 부품시장의 큰손이 되었다고 한다.
며칠 전 우연히 만나서 물어보니 최근 2달에 20컨테이너를 수입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잘 지내시냐고 물어보니, 지금 한국에서 열심히 부품 사고 있다고 하며 지방에 운영하던 매장 3곳은 다 접고 프놈펜에 매장을 4개 열었다고 말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별다른 사회경험도 없이, 본격적으로 수입을 시작한지 불과 6년 만에 기존의 대형 수입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국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을 보니 나름 뿌듯함을 느꼈다.
헤어지면서 차를 보니 고급 일본 승용차다. 한국 부품으로 돈 벌어서 일본차 타냐고 핀잔을 주니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활짝 웃으면서 여동생인가 와이프는 모닝 타고 다닌다고 너스레를 떤다.
앞날이 창창한 이 바이어의 사업이 더 잘되길 바라며, 분명 이 바이어에게 물건을 떼어다 유통하는 더 젊고 야심 있는 새로운 바이어를 찾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더불어 성공한 캄보디아 바이어들이 한국의 승용차를 타고 와서 나에게 자랑하는 모습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