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독립운동을 현재의 스타트업과 비슷하다고 느낀다면 독립운동에 대한 모독일까?
상해에서 뜻 있고 힘 있는 한인들을 규합해서 국권 회복의 실마리를 만들려던 안중근의 의도는 좌절되었다.
돈 있는 자들은 세계정세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한유한 선비의 풍류처럼 말했다. 허황된 사업을 도모하지 말고 시골에 작은 학교라도 차려서 교육으로 백년 앞을 준비하라고 간곡히 충고하는 자들도 있었다. 안중근은 지금 당장과 연결되지 않는 백년 앞을 이해할 수 없었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연해주의 한인들이 삼백여 명의 병력으로 의병대를 결성했다. 안중근은 참모 중장으로 오십여 명을 거느렸다. 회령에서 일본군이 사방을 포위하고 조여 들어왔다. 부대는 대항하지 못했다. 안중근이 물색없이 포로를 살려주어서 기습 공격을 자초하게 된 것이라고 대원들이 말을 퍼뜨렸다. 사람들과 더불어 세력을 일으키기는 점점 어려웠고 혼자서 가야 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이듬해 이토가 곧 만주에 온다는 소문이 한인사회에 퍼졌다.
≪하얼빈 - 김훈≫
스타트업은 창업자가 기업을 만들겠다는 큰 뜻을 세우고 마음에 맞는 동료를 모으는 동시에 투자를 받으려 하듯이,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도 조국의 독립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동료를 모으고 재력가들의 투자를 받아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한다.
물론 스타트업은 자신의 이익이 목적이고 성공하면 자신이 가장 먼저 이익을 얻는다. 반면 독립운동은 목적이 자신의 이익보다는 국민과 국가의 이익이 목적이고 실패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기에 둘은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추진하는 방법은 거의 같다. 성공할 확률이 매우 희박한 것도 같다.
소설 속에서 젊은 안중근은 부유한 부친의 노자를 받아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펼쳐보려 한다. 하지만 발표 능력(?)이 부족했는지, 사업계획서(?)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는지 동료도 구하지 못하고 투자도 받지 못한다. 책에서는 한인 재력가들이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다고 표현하지만, 결국엔 상해에 임시정부가 선 것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초보(?) 독립 운동가로서 뜻을 알리거나 믿음을 주는데 익숙치 않아서 실패했을 것이다.
나중에 연해주에서는 한 의병대의 고위 간부까지 올라 병력까지 이끌게 되는데 이를 통해 안중근이 상해의 실패를 통해 한층 성장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의병 활동이 처참하게 실패하고 독립 운동가로서의 세력을 일으킬 수 있는 입지마저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점 역시 스타트업과 비슷하다. 사업을 여러 차례, 처참하게 실패하면 다시 창업하기가 극히 어려운 것처럼.
안중근은 동료나 모으거나 투자를 받기 위한 입지마저 흔들리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이자 삶의 밑천이라고 할 수 있는 목숨을 투자하여 마지막 사업에 착수한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생명을 투자금으로 써야 하고 절대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사업이며 성공하여 조국의 독립을 앞당긴다 하더라도 자신은 그 성공의 과실을 조금도 맛볼 수 없는 사업이었다. 결국엔 모든 것을 건 그의 마지막 사업은 성공한다.
실패로 성장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남은 모든 밑천까지 모두 쏟아부어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흔하다. 생명이 위협받는 경우가 거의 없는 현재의 세상에서 이 책을 통해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11월에 접어들면서 책 읽기 좋은 날씨가 되었다. 작가 특유의 담백한 문장들이 몰입력을 한껏 높여주는 이 재미난 소설을 저마다의 관점이나 처한 상황에 빗대 읽다 보면 작가가 독자에게 주려는 메시지 그 이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