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불현듯 소설이 고픈데 매대의 수 많은 소설들이 선택 장애를 일으킬 때,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을 읽으면 딱이다. 저렴한 가격에 의미있고 더러 재미까지 있는 소설들이 수두룩하다.
소주를 한 모금 삼켜내는 장 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작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낙오하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말이야!
가난한 홀어머니 아래 장 부장은 장학금을 받기 위해 대학교에서 공부만 했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입사해서는 주말 없이 야근하고 휴가도 반납했다. 신입 시절 여행을 가고 싶어 사표도 냈지만, 어머니의 뇌졸중으로 비굴하고 초라하게 사표를 번복했다. 어머니는 곧 눈을 감았지만, 그날도 특근 중이라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한참 후에 여행 가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했지만, 아이 학원비는? 집 대출은? 이라는 말에 마음을 접었다.
술에 취해 휘청거렸지만, 장 부장은 평소처럼 위엄있게 직원들에게 말했다. “이제 가야지, 일찍 자야 내일 출근하지”
직원이 말했다. “이제 일찍 일어나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은 부장님 송별회잖아요”
20년 만에 정리해고를 당한 장 부장은 화장실에서 먹은 것을 게워냈다. “퇴사할 때까지 무슨 진상이래” “댁에 연락드릴까요?” “몰랐어? 3년 전에 이혼하셨잖아”
≪2022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中 [싹 - 임춘보]≫
해외에 오래 살때는 가끔 한국에서 소설책을 구해서 읽었다. 종이책으로 봐야 읽는 맛(?)이 좋고 빌려서 시간제한을 두고 책을 읽는 것이 싫어서 항상 사서 읽었다. 하지만 책값은 비싸게 느껴 원하는 책을 다 사진 못했고, 고르는 시간도 아끼기 위해 많은 이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읽었다.
가끔 소설이 고플 때 도서 사이트 검색을 하지만, 베스트셀러도 워낙에 많아 책 고르기는 항상 어렵다. 마치 안 팔리는 식당의 수십 종류의 음식 메뉴처럼 사이트의 수많은 책이 선택 장애를 불러일으킨다. 이럴 때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을 사서 읽으면 딱이다. 책 한권 값 18,000원으로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의 20여편의 소설을 보면 중간에 읽다 말아도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든다. 그리고 수백 편의 단편 소설들 중에 전문가들이 엄선하여 뽑은 것들 뿐이기에 작품성이 뛰어난 것이 많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가장 큰 장점은 한편이 20페이지 정도로 짧아서 직장생활이나 비즈니스 활동 중 짧은 여가에 틈틈이 보기 쉽다는 점이다.
물론 단점도 있는데, 짧은 분량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함축하기 위해 비유나 암시가 많고 주로 당대 사회의 이슈를 다루어서 오락적인 재미가 덜하다. 최근에 자주 나오는 주제는 세대갈등, 동성애, 다문화 갈등 등으로 마냥 행복하고 속시원한 사이다 같은 내용보다는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음울하거나 비관적인 내용이 절대다수다. 아마 심사위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기 위해서겠지만 독자로서는 읽고 나면 기분이 우울해지곤 한다.
이런 부작용이 있지만, 작가 지망생이나 이제 막 작가가 된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쓴 경우가 많아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실용적인 면도 있다. 다양한 직업이나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시점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문학적인 만족감 외에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도 얻게 된다. 100% 현실이 아니지만 내가 어렸을 적 상상했거나 막연히 생각했던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이질적인 상황에 빠진 주인공을 보자면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쳐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아주 음울한 내용이라면 내 삶은 저 주인공보다는 낫군 하는 안도감은 덤이다.
만약 소설에 관심이 많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선택하기 어렵고, 한편에 300페이지 이상의 장편 소설이 부담된다면 문학상 수상집 중 하나인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을 추천한다. 참고로 재미와 의미를 모두 인정받아 영화까지 나온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문학상 수상 단편 소설이었다. 이 신춘문예 당선소설집은 가성비 높고 의미와 재미도 찾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