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책방이 있을까요?
밤늦게 도시 산책을 자주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어제는 서울 시내를 잠시 걸을 겸 신촌에서 아현까지 걸었다.
길 한 구석은 철거예정으로 쓰여진 큼지막한 글씨의 종이가 유리 안쪽에 붙여져 있는 빈 상가들이 많았다.
방향성을 잃은 풍경, 미래로부터 지워진 시간 같았다.
<디스토피아>라는 표현이 떠오르기도 했다.
확대해석일 수 있겠지만, 필립 K딕이 했던 표현을 떠올리자면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까지 지워버리는 것이라고
그러던 중 한 상가 앞에 멈춰섰다. 유리창 너머, 웨딩드레스가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다.
말없이 서 있는 마네킹은 한 손에 꽃을 들고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쟈스민 컬러, 블루, 에메랄드빛의 드레스들이 조용히 걸려 있었다.
그 풍경은 생명력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그보다는 사라져가는 생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의 기류 속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웨딩가구거리’의 몇 안 되는 상가 중 하나처럼 보였다.
서울 서북부의 산동네라는 수식어와 화려한 뉴타운의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는 공간.
줄지어 선 상가들은 마치 누군가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침묵하는 것 같았다.
나는 걷는 동안, 자주 되뇌는 단어들을 마음속으로 꺼내본다.
자유. 창조. 사랑.
이 단어들을 속으로 말할 때, 내 안의 악한 욕망은 얼어붙는다.
아니면, 그 욕망을 불태우기 위해 나는 책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숨겨진 진리나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큰길 어디에도 책방이 보이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술집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술을 마시러 가는 행인들처럼 그곳에 들어간다면, 내가 찾고 있던 무언가는 아마 더 멀어졌을 것이다.
결국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충정로 뒷편에 '만유인력'이라는 무인서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곳에 내가 찾고자 하는 사랑과 창조를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