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적어보는 일
“어떤 일을 하고 싶니?” “나다울 수 있는 일이요”
당연한 일을 의식적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었다. 저 대답을 했을 당시에 내가 생각했던 나다운 일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 자신만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지 않은 채, 첫 번째 일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인생을 성찰할 수 있도록 툴킷을 만들고 워크숍을 하는 곳이었다. 사람의 마음과 닿아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방향은 비슷했지만, 그곳에 ‘나만의 의미'가 있진 않았다. 그곳에서 일해야 할 뚜렷한 이유와 목표를 찾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조직이라는 형태가 맞지 않았던 탓이라 여겼는지 그다음엔 자유롭게 소속되지 않고 일하고 싶었다. 두 곳의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다. 콘텐츠 마케팅을 먼저 제안하고 만들어낸 자리였다. 시급을 받았고 반쪽짜리 소속감과 장소의 자유로움을 누렸다. 일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일이 깊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회사는 더 많은 시간과 보상을 보장해 줄 여력이 없었다. ‘보상을 제대로 받았다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라는 일기를 보면 알 수 있듯, 나 자신도 일과 보상을 저울질했다. 일의 형태를 자유롭게 하면 자유롭게 일하는 것이었을까? 그건 자유가 아니었다. 난 관망하는 태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대하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의 만족감으로 더 진하게 달려들어 보상이든 시간이 든 신경에 오르지도 않은 상태일 때, 그게 자유가 아닐까를 배웠다.
지금의 나는 고령화 사회에 대한 관심을 약 4년째 이어오고 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책임감과 부채감, 해결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그런 부류의 관심이다. 나 혼자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고 자격이 없는 건 아닐까 계속 자격을 갖추는 방법만 찾게 만드는 그런 것이다.
이 분야에 나만의 질문이 생길 때마다 의도적으로 일하지 않기를 선택하고 답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늘 자신감이 없었다. ‘이 생각이 맞는 걸까?’ 내 생각과 관심이 합리적인지를 매일 되물었다. 지인들을 만나면 일하고 있지 않은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는 마음에 한껏 작아지곤 했다. 정작 흥미를 파고들기 위한 행동을 하기보다 ‘해도 되는지’를 묻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감정을 들였다. 동시에 알 수 없는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뭉쳐 몸과 마음이 무겁고 버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무언가를 이해했다. 나는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 대단한 일을 해야만 의미 있는 내가 되는 줄 알았다. 내가 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된다는 건 애쓰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나는 나 그자체로 존재하고 있었다. 일, 관계, 사랑 등은 모두 나 '다음'이었다. 지금의 너로도 충분하다는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나니 나를 더 믿어주고 싶어졌다. 내가 이미 온전하다는 사실이 바탕이 되니 하고 싶은 일이 훨씬 산뜻하게 다가온다. 관심 분야는 조금씩 더 뚜렷해져 가고 있고 이제는 그 에너지가 무겁지 않다.
누군가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으면 고등학교 연극부 생활을 꼽는다. 늦은 밤까지 연습하고 다 같이 소강당의 불을 끄고 갔던 그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난 왜 행복했을까? 당시의 나에게 가장 재미있고 호기심을 느꼈던 일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무대에 올라 표현했고 회장으로서 갈등을 중재할 때 친구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며 부당한 일에는 나의 일처럼 앞장섰다. 그때의 나는 무엇도 관망하지 않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정말 나다웠다.
이제는 의미라는 것이 세상의 크기만큼 넓고 사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저 각자의 의미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내 시선이 바깥으로 향해있을 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우리가 연결되어있다고 믿어서 남 일을 내 일처럼 느끼기 때문에 모두의 평안과 안위를 고민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내 관심사를 더욱더 깊게 고민하고 빠져보려 한다. 나이가 들어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회를 누리며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자유롭고 깊이 있는 소통 방식을 찾아 한 명 한 명의 잠재력을 일깨우며 동시에 그들의 심적 위안을 더 해줄 수 있는 일을 만들어가고 싶다.
이렇게 한편의 글로 일과 제 자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시간과 경험들을 지나왔습니다. 앞으로의 방향으로 끝을 맺었지만 또 언제 어떻게 다른 생각과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를 일이지요. 그렇지만 마침표를 찍은 이 글이 제게는 정말 큰 의미입니다. 주저리 주저리 고민을 늘어놓고 누구에게 보여줄 수 없는 메모들만 끄적였었지, 마무리를 지어본 글은 처음이거든요. 이 과정에서 '좋일업방'이라는 수업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댓글 남겨주세요. 객관적인 시선으로 여러분을 바라봐 줄 따뜻한 인연을 소개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