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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거울 Jul 01. 2021

20년 만에 용기를 내었어요

마음을 봅니다

| 아들의 마음 |


엄마의 자궁은 온도도 크기도 나에게 딱 맞는 수영장이었어요.

때때로 배가 고프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지만 가장 힘든 것은 엄마의 한숨소리와 울음소리였어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혹시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든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어요. 내가 너무 일찍 엄마에게 와서 엄마가 당황한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지요.


슬퍼하는 엄마에게 말장구를 치며 말을 걸어보았지만 엄마가 반응이 없어 나도 한동안 웅크리고 있기도 했답니다. 어느 날 수영장에 물이 사라지고 나의 절대적 공간에서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는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수많은 소음들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찾았지만 저에게는 낯선 체취와 목소리밖에 없었어요. 이따금씩 말을 걸어주던 다정한 엄마가 없는 세상은 너무 두려웠지만 나는 숨죽여 울 수밖에 없었어요. 울지 않는 착한아이가 되면 엄마가 빨리 오실 줄 알았거든요.


오랜 시간이 지나 엄마를 만났을 때, 너무 반가워 달려가 안기고 싶었어요. 그러나 내 발과 온 몸은 얼어붙은 듯 한걸음도 떨어지지 않았어요. 엄마와 볼을 맞대고 엄마 품에 안기는 상상을 수없이 했지만 나는 그저 돌아서서 혼자 울 수밖에 없었어요. “




| 엄마의 마음 |


아들이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지만 정서가 불안하고 엄마와도 소통이 안 된다고 걱정인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조용한 성품에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의 감정에서 수분 빠진 빵 같은 푸석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결혼초반부터 경제적인 문제와 집안갈등으로 이혼까지 생각하던 차에 임신이 되어 별거 중에 출산하였습니다. 아이는 출생 후 바로 큰아버지 댁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몇 년 후 남편과 재결합하여 아들 둘을 더 낳았지만 큰아이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초등학교 입학 할 즈음에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큰 아들은 새로운 가족과 사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할 법도 할 텐데 별로 표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친구 사귀는 것을 힘들어하였고 늘 의기소침하고 정서가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엄마에게 조차 속 마음을 도통 보여주지 않아 아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지금까지도 숙제라며 한숨을 내쉽니다.


| 상담사의 마음 |


그녀의 아들이 누군가와 친밀감을 가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태아가 엄마의 자궁에 머무는 10달동인 엄마의 슬픔과 아픔을 고스란히 먹고 마시는 동안 느꼈을 그 무서웠을 마음에 잠시 더듬어봅니다. 메마른 엄마의 태속에서 숨 죽인채 지내야 했던 아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따뜻한 엄마와 쌓아야하는 애착의 기회를 빼앗긴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주저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헤어짐과 버려짐의 고통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겠지요.


애착이론에 의하면 4세 이전에 아이와 양육자간의 애착이 형성되지 않으면 심리적 안전감의 결여로 뇌의 성장. 감정과 지적 능력도 더디게 됩니다. 애착은 행복과 자존감을 만드는 토양입니다. 이 안전한 토양위에서 아이는 지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마음껏 성장하게 됩니다. 최근 뇌 과학자들은 태내의 환경이 출생 후의 학습능력이나 정서적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그 순간부터 아이는 엄마가 웃을 때 함께 웃고 엄마가 아파할 때 같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태에서 10개월간 무엇을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가 출생 후 10년의 행, 불행을 좌우한다는 말을 증명해줍니다.


결혼과 임신이라는 인생의 대 전환기에서 새로운 생명을 환영해주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엄마의 좌절을 더듬어봅니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인해 스스로를 세울 수 없을 만큼 힘들였기에 내 속의 또 다른 생명을 기쁨으로 맞아주지 못하고 외롭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에 맺혀있습니다. 지금 엄마는 아들의 빗장이 닫힌 아들의 마음 문 앞에서 안타깝게 서 있습니다.

| 용서와 화해 |


아들과 엄마를 다시 만났습니다. 20살이라기에는 어린 눈빛으로 응시할 곳을 찾는 불안한 눈동자와 마주쳤습니다. 아들과 엄마는 이제껏 미뤄 두었던 서로의 마음 마주보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심리적 산소인 엄마의 사랑을 느끼기도 전에 낯선 곳으로 보내진 거절감과 자신의 고통이 너무 커서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나의 분신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을 직면하기가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20여 년 동안 엄마는 아들에게, 아들은 엄마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인해 서로에게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컷은 “완벽한 엄마는 없다. 다만 충분히 좋은 엄마가 있을 뿐이다”고 했습니다.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사랑의 이름으로 문을 두드리는 엄마는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입니다. 엄마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아들이 자기만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로의 탐험을 가능하게 해 줄 것입니다.

서로의 관계회복을 위해 ‘애착’레시피가 필요합니다. 엄마의 인생. 아들의 인생, 그리고 모자간의 행복한 삶을 위해 서로의 신뢰와 사랑은 필수 재료입니다.


“그땐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너를 책임져주지 못했어. 엄마를 용서해 줘. 엄마는 너를 사랑해!

엄마의 진심어린 사과는 마비된 아들의 마음을 깨우고 용서와 화해를 불러왔습니다. 이제 아들은 진정 20살의 젊은이가 되어 자기의 삶을 힘차게 달려 나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엄마, 이제 괜찮아요. 이 날을 기다렸어요. 엄마, 고마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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