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랬지..

부모의 사랑

by 어미이징

14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4명의 자녀를 낳고, 키웠다.

허니문 베이비로 첫 째가 왔을 때는 출산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본 '출산의 고통'이라는 말은 나에게 크게 다가오지도

의미가 전달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첫 째가 출산 예정일이 지났지만 나올 기미가 없어서

유도분만 날짜를 잡고 집으로 왔을 때에도

출산의 고통이란 소리는 나에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같은 소리였다.

출산 예정일이 5일이 지난 그날

분만실에 들어가 수면유도제를 맞고 기다리면서

옆 방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기 전까지 남편과 웃고 떠들었다.

비명소리가 나는 중에 나도 진통이 시작됐다.


"여보 나올 것 같아"

" 어어, 잠시만 간호사님 모셔올게"


" 아직이에요. 다시 호출해 주세요. "

진짜 나올 것처럼 아팠는데 아직도 아니라니...

나는 남편에게 몇 번의 나올 것 같은 느낌을 전달했고,

남편은 몇 번을 더 호출했고,

간호사는 몇 번의 아직이라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출산 처음인 우리에게 수박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일 때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지금이야!! 나올 것 같아. 빨리!!"

"너무 많이 불렀는데 확실해?"

"빨리 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말했고, 남편은 허둥지둥 간호사를 모셔왔다.


내 상태를 본 간호사는 바쁘게 움직였고, 누워있던 침대는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했다.

호흡을 짧게 하라고 하셔서 후후후 후후후후 반복했고, 감격스러운 출산을 했다.

시간으로는 유도분만을 시작한 지 14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와 함께 탯줄로 연결되어 10개월을 살았던 아기는 2.64kg의 작고 작은 아기였고,

커다란 눈망울에 조그마한 입술이 매력적인 아이였다.


말로만 듣던 “조동” 조리원 동기를 만들 수 있는 조리원으로 입소했다.

“어미이징님 저희가 리모델링을 해요. 퇴소 일정에 맞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늦게 입소하셔서 빠른 퇴소를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2주간 케어를 받으려 했는데 9일 만에 퇴소를 해야 했다.

내가 마지막 입소자여서 그런지 입소한 지 2-3일 지나니 남아있는 산모는 나와 4차원 세계가 가득한 산모 둘 뿐이었다. 말로만 듣던 조동은 내 인생에는 없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친정엄마는 애기 씻기는 거, 빨래, 먹을 것 등 신경 써 주신다며 친정으로 오라 하셨다.

퇴소와 함께 친정으로 가니 엄마가 음식 몇 가지를 준비하고 계셨다. 첫날은 금방 지나갔고 우리는 이상한 친정살이가 시작될 줄 모르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엄마가 없다. 저녁에도 없다. 아빠 밥을 차려드렸다.

그다음 날, 또 없다. 우리가 먹을 저녁을 만들기 시작했고 밥을 차렸고, 치웠다. 우리의 일과 친정의 일까지 하다 보니 남편은 더 힘들었고, 나 역시 새벽 내내 깨는 신생아 돌보느라

몸의 여유와 정서적 여유가 와장창 무너졌다.

계속된 친정 엄마의 부재에 집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며 칠 만에 우리 집으로 향했다.

그런 우리에게 엄마는

“왜~ 좀 더 있지”라고 말했다.

난 엄마에게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했고 우리 집이 더 편할 것 같다고 에둘러 말했다.


애를 낳고 보니 더더욱 엄마의 입장이 헤아려지지 않는 나를 못났다 여겼다. 휴.

내가 받고 싶었던 엄마의 사랑 너에게 줄게.

부모의 모습을 보고

부모에 대한 책임과 의무, 사랑이 내게 심겼다.


그러니까 더 감사한 것.

그래서 더 감사한 것.

그렇기에 더 감사한 것.

그럼에도 더 감사한 것.




작고 작은 아기가 벌써 13살이 되었다.

그 아이는 우리 가정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첫 번째 보석이다.


재밌는 것을 보면 같이 웃고

슬픈 것이 있으면 같이 슬퍼하고

귀여운 것을 보면 같이 귀여워하는 아이.


엄마가 피곤하면 혈자리를 주물러 주기도 하고

친구처럼 고민도 나누고

같이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책도 공유하며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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