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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Apr 20. 2022

아니 이게 웬 찜통이야

한국 촌놈의 인도 상륙 45일차(2022. 04. 20)

임시 숙소에 머무는 동안 슬금슬금 태양빛이 뜨거워지더니 어느덧 한낮 최고기온이 41도를 웃도는 델리의 봄이 한창이다. 3월 말부터 이 방 저 방에서 삡- 에어컨 켜는 소리가 들려온다. 인도 아파트에는 거의 백이면 백 벽걸이형 에어컨이 달려 있다. 어디 그뿐인가 천장에는 큼직한 날개로 사람 목도 칠 수 있을 것만 같은 대형 선풍기가 붙어 있다. 물론 저어기 산골짝에 있는 허름한 판잣집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이 들어가 살겠다고 하는 집 중에 에어컨과 선풍기 없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다 같이 더워하면 문제가 없으련만 사람마다 체감이 다르니 난감한 경우가 왕왕 있다. 특히 공용 거실에 나와서 다른 투숙객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에어컨 리모컨을 바라보는 상반된 눈빛들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이마 위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자와 오들오들 바람막이를 껴입는 자의 대결이다. 한 사람이 방금 켜 놓은 에어컨을 뒤따라 들어온 사람이 냉큼 꺼 버리는 이 상황, 이름도 성도 모를 사람들과 함께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에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시베리아도 이것보단 덜 춥겠다. 남들보다 세 배 이상 추위를 타는 나에게 공용 거실의 냉방 수준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특히 4월 들어서는 다들 덥다고 느끼는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에어컨을 틀어대는 바람에 반팔만 입고 갔다가는 등골이 오싹해 도무지 밥을 먹는 행위에 집중할 수가 없다. 가을에나 입어야 할 두께의 긴팔 잠바 하나를 더 걸치고 가야 그나마 좀 살만하다 싶은데 이것도 썩 완벽한 방법은 못 된다. 여전히 뒷목에 냉기가 아른거려 어깨가 말린 오징어처럼 움츠러드는 건 피할 수가 없다.

하루는 K가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이게 웬 찜통이야. 선풍기도 안 켜고 있었어? 드랑이와 발바닥에 땀은 좀 나지만 크게 불편하다고 느끼진 않았는데 다른 사람 눈에는 허연 증기가 푹푹 터져 나오는 만두 찜솥에 들어가 앉아있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선풍기? 아직 에어컨 튼 적도 없는데. 여태까지 내가 한 말이 농담인 줄 알았는지 나를 무슨 기인이라도 구경하듯 쳐다보는데 내가 생각해도 좀 징한가 싶어 푸하하 웃어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추위를 극도로 싫어했던 아이였다. 다른 친구들이 눈썰매 타러 가자, 스키를 배우고 싶다, 한창 부모를 졸라댈 때 단 한 번도 겨울 스포츠에 손을 내민 적이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변한 건 없었다. 여전히 매년 겨울을 시름시름 앓으며 힘들어했고 추위 없는 나라에 사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염불처럼 외우고 다녔다. 한기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추워봤자 얼마나 춥다고 저러나 하겠지만 나는 언제나 모두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겨울을 소화해내지 못했다.

인생을 통틀어 손꼽아 기다린 설욕의 기회다. 모두가 혀를 내두르는 인도의 더위 앞에 고개 빳빳이 들고 어디 한번 더워볼 테면 더워 봐라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어 보는 거다. 추위는 못 이겨도 더위는 견딜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며 인도의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의 기온은 3월이면 30도, 4월에는 40도, 5월은 50도라 한다. 과연 5월의 태양빛이 얼마나 사람을 익게 만들지 그 맛이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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