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와이파이를 설치하는 데 꼬박 엿새가 걸렸다. 이삿날이었던 5월 2일 월요일, 휴대폰 통신사에 연락해 무선인터넷을 깔아달라 주문을 넣었다. 알겠다고, 내일 당장 사람을 보내겠다 해놓고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인터넷 설치하러 도대체 언제 와요? 혹시라도 매섭게 독촉하면 성격 더러운 외국인이라고 욕할까 봐 최대한 부드럽게 매일같이 애걸복걸 부탁해도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대답은 망할 놈의 띠께(힌디어로 OK)뿐이었다.
금요일 밤 10시까지도 나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혹시라도 지금 와서 설치해 주는 건 아닐까 누군가 초인종 누르기만을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기다렸지만 끝끝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튿날이었던 5월 7일 토요일 오후 1시, 억제할 수 없는 분노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뻗치고 말았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인도 최대 통신사 Airtel의 서비스가 어떻게 이 지경일 수가 있느냐 길길이 날뛰며 지랄 맞은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줄 참이었다.
띵-동. 이 타이밍에 온다고? 이것들이 지금 장난하나 싶었지만 에어텔 설치기사는 새빨간 유니폼 반팔에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초인종을 눌렀다. 10분만 늦게 왔어도 이미 컴플레인 전화를 갈겨버렸겠지만 결국 이렇게 오긴 왔으니참을 인자 새기면서 조용히 문을 열어줬다.
어디에 라우터를 설치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주방 옆 창고로 걸어가는 설치기사를 보며 그래 네가 정말 전문가는 맞구나 싶다가도 도대체 뭘 하느라 이 간단한 일을 일주일이나 꾸물거릴 수가 있느냐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막막해졌다. 저 설치기사가 늑장을 부린 걸까 아니면 에어텔 지점이 일처리를 못한 걸까. 만약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면 누구에게 화살을 돌려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검색도 안 되지, 줌 회의도 끊기지, 글도 못 쓰지, 넷플도 안 보이지, 고구마 100개 먹은 답답함이 이런 느낌일까. 속 터져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고난의 일주일 끝에 드디어 무선 인터넷망이 설치되었고 기사는 팁을 받기 전까진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듯 발걸음을 질질 끌었지만 그동안 당한 게 얄미워 차마 주진 않았다. 그 후로 오래오래 빠른 속도를 즐기며 원 없이 인터넷에 접속했습니다, 라는 해피엔딩이면 참 좋겠는데 역시 쉽지 않다.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는 동네다.
와이파이를 깔았어도 검색이 안 되는 건 매한가지다. 아까 기사가 설치한 직후에는 분명 얼추 됐는데 그새 속도가 느려졌다. 이게 정녕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미스터리다. 로딩 골뱅이가 끝도 없이 돌고 돌고 또 돌고, 그러다가 결국 페이지 오류. 넷플과 애플 TV는 아예 로그인도 잘 안 되고, 열 번 중 한 번 꼴로 들어가져봤자 영상이 뜨지 않았다.
이번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아마존 인디아에서 와이파이 증폭기를 주문했다. 택배가 도착하는 데 또다시 사나흘이 걸렸고 결국 이사 온 지 꼬박 2주가 되어서야 한국인이 만족할 만한 스피드로 거듭났다. 증폭기 하나 꽂았다고 이렇게까지 빨라지다니 그동안 흘린 진땀이 억울할 지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하나의 과제를 해결했다는 뿌듯함에 변태적인 쾌감마저 느꼈다.
인도에 온 후로아무 걱정 없이 인터넷이 빵빵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두 달 역시 마찬가지였다. 멀쩡하게 접속되다가도 곧이어 정전으로 튕겨나갔고 그러다 다시 접속되기를 무한 반복할 뿐이었다. 이제 드디어 나의 집에 들어왔고, 나만의 와이파이를 깔았고, 천하무적 증폭기까지 꽂았으니 한국 부럽지 않은 천국이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