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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Apr 19. 2022

우물 안 망고를 벗어나게 해 줘서 고마워

한국 촌놈의 인도 상륙 44일차(2022. 04. 19)

인도에 오면 망고를 배 터지게 먹을 줄 알았다. 여기는 더운 나라니까 당연히 열대 과일이 싸지 않을까 철석같이 믿고 왔건만 보기 좋게 통수를 맞았다. 숙소에 짐을 푼 지 나흘째 되는 날 마트에 가서 망고를 고르는데 개중 제일 저렴한 사페다(Safeda) 품종으로 담았는데도 1kg에 378루피, 약 6,100원을 불렀다. 1kg라고 해봤자 망고 3개를 넣어 줬으니 개당 2천 원인 셈이다. 심지어 고급 품종 알폰소(Alphonso) 1kg에 700루피(11,200원), 개당 족히 4천 원은 줘야 한다. 수박이나 토마토 같은 저렴한 현지 과일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놀랍도록 비싼 가격이다.

1일 1망고를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당분간 보류 판정을 내렸지만 그래도 한국보다야 인도에서 망고를 사 먹는 게 유리한 건 사실이다. 한국 마트에서 파는 망고는 가격표만 봐도 진땀이 났다. 투명 플라스틱 팩에 태국산 망고 두세 개를 가지런히 넣어 포장한 상품은 기본이 만원을 훌쩍 넘었다. 가끔 재수 좋게 유통기한 임박한 상품을 떨이로 팔기도 했지만 언제나 지갑이 가벼운 청년 집밥러에게는 사치재에 불과했다. 아주 좋은 날 나를 위한 선물이라며 일 년에 두어 번 사 먹은 게 전부였다.


인도에 오고 나서는 그래도 꽤 자주 맛볼 수 있는 과일이 되었다. 남들이 맛있다고 칭찬하는 품종으로만 골라올 순 없지만 제아무리 저렴한 버전이라도 역시 망고는 망고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상큼하면서도 쌉쌀한 풀향에 푹 빠져버렸다. 말캉말캉한 과육은 단단한 어금니로 우물우물 씹기 미안할 정로도 부드러워 할 수만 있다면 혀로 녹여먹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가격이 나가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과일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얼마든지 내 지갑을 털어가라 활짝 벌려줄 요량이다.

인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는 매주 마트에 갈 때마다 색다른 품종이 등장한다는 거다. 한국에서는 망고를 종류별로 고른다는 게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말이지만 인도에서는 어느 마트를 가도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처음으로 만난 망고는 사페다와 알폰소였다. 우선은 사페다가 저렴하니까 나는 이것부터 도전하기로 했다. 1kg를 포장해서 숙소 방구석 어딘가에 던져놓고 며칠 숙성시킨 후 3일 내내 저녁 후식으로 먹었다. 사페다는 쌉쌀한 치약향이 강하게 감돌면서 단맛이 적은 과육이 특징이었다.

몇 주가 지나자 마트에 토타푸리(Totapuri) 망고가 등장했다. 사페다보다 조금 더 저렴해 1kg에 300루피인데다가 눈에 익숙한 태국 망고처럼 길쭉길쭉 크기도 커서 마음에 들었다. 신이 나서 냅다 포장해 데려간 후 마찬가지로 하루 이틀 지나 먹어봤다. 완전히 색다른 맛이었다. 파스텔톤 연한 과육에 은은한 향과 맛이 2% 부족한 맹숭맹숭 망고였지만 사페다처럼 쓴맛이 강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무난하게 먹을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다시 몇 주가 흐르고 마트에 하맘(Hamam) 망고가 들어왔다. 가격은 1kg에 748루피(12,000원) 무려 알폰소보다 더 비싼 놈이다. 처음 보는 대왕사이즈에 일단 놀라고 시작했다. 사람 얼굴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큰 망고가 심지어 색깔까지 고운 노란색 옷을 입고 있는데 어떻게 안 데려올 수가 있을까. 원래는 알폰소를 살 차례였지만 나는 하맘과 알폰스를 각각 한 개씩 주문했다. 여느 때처럼 방구석 모서리에 놓으려다 혹시 직원이 청소할 때 걸리적거릴까 싶어 장롱 안에 넣어뒀는데 다음날 문을 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모든 옷가지에서 무지막지하게 달달한 망고향이 진동을 하고 있었다.


역대급 망고가 될 거라는 직감은 현실이 되었고 하맘 망고는 최고의 맛과 향을 선사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달콤하고 아름다운 과일 향은 처음이었다.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나는 듯하다가 달달한 망고향으로 넘어갔다가 은은한 꽃향까지 느껴지는 신비로운 하맘. 옛날 옛날 인도 왕족들이 먹던 망고라는 이야기에 절로 수긍이 가는 완벽한 망고를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우고도 오래도록 입안에 잔향이 맴돌았다.

그 다음날 드디어 망고의 왕이라는 알폰소 망고를 먹었다. 알폰소는 테니스공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로 한 손에 쏙 들어올 정도로 아담하다. 과육이라 해봤자 몇 조각 나오지도 않아 포크질 몇 번 만에 끝나버렸지만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만한 맛이었다. 달달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단맛과 향긋하지만 취하게 하지 않는 향기가 우아한 품종이었다. 어제 먹은 하맘이 화려하고 큰 꽃다발이었다면 알폰소는 꽃 한 송이를 곱게 포장한 것만 같다. 완전히 매력이 다른 녀석들이었다.

마트에 갈 때마다 오늘도 새로운 망고가 들어왔을까 은근한 기대감에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하나씩 먹어보며 비교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모른다. 태국 망고만 있는 줄 알고 살았는데 인도에도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자체적으로 생산된다니. 모르는 게 많은 이방인은 언제나 놀라움의 연속이다. 우물 안 망고를 벗어나게 해 줘서 고마워,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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