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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May 20. 2022

숨은 개미 찾기가 따로 없군

한국 촌놈의 인도 상륙 75일차(2022.05.20)

개미와의 전쟁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이사 온 지 일주일 되던 날 아침, 주방 바닥을 기어 다니는 작고 붉은 개미를 발견했다. 세 마리가 뜨문뜨문 돌아다니길래 혹시 더 있나 싶어 한 발짝 떨어져 쳐다봤다. 그랬더니 세 마리가 열 마리가 되고, 스무 마리가 되고, 급기야 움직이는 작은 점들이 겹치고 겹쳐 붉은 공처럼 보였다. 쓰레기통이랍시고 사용하던 이사 박스 안에서 분주하게 뱅뱅 도는 개미 떼를 본 이상 호각을 불든 불화살을 쏘든 전쟁은 시작됐다.

벽과 바닥 틈에서 기어나온 걸까 아니면 집 어딘가에 아지트를 심어놓은 걸까. 일단 바닥을 기는 놈들은 살짜쿵 밟아드리고 박스는 쓰레기 수거장에 냅다 던지고 돌아왔다. 개미의 출처가 궁금해 하루에도 수 차례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봤다. 숨은 개미 찾기가 따로 없군. 어디에 약을 쳐야 할까 이리저리 궁리해봐도 도무지 단서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주방과 거실 바닥이 쿠앤크 아이스크림처럼 바닐라 바탕에 검은 점이 콕콕 박혀있어 도대체 저 점이 개미인지 돌인지 구별조차 어려웠다.

우선은 시중에 파는 개미퇴치제를 구매했다. 천연 허브 추출물 100%를 자랑하는 친환경 제품이었다. 개미가 나오는 곳에 5일 동안 연속으로 뿌리면 사라진다는 광고 문구를 믿어보기로 했다. 매일 주방 곳곳에 사정없이 뿌려댔지만 다음 날이면 어느샌가 다시 돌아다니고 있었다. 스프레이를 직빵으로 맞은 개미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굳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으나 그건 일회성 죽음일 뿐이었다. 나는 나대로 잔인해져 가고 개미는 개미대로 독기가 올라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됐다.

약을 뿌린 지 엿새째 되던 날 아침,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개미 군단의 기습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주방을 넘어 거실로 이어지는 공간까지 크고 작은 개미가 득시글거렸다. 심지어 붉은 개미가 까만 개미까지 데리고 왔는지 뉴페이스도 보인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저걸 어떻게 다 죽이나 막막해 스프레이를 난사해버렸다. 직격탄을 맞은 놈들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지만 나머지 놈들은 순식간에 감쪽같이 퇴각했다. 비밀 벙커가 있는 게 분명했다.


결국 용병을 불렀다. 개미와의 전쟁을 끝낼 강력한 묘책을 보여주길 바라며 개미 바퀴 박멸 업체를 고용했다. 고를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을 골라 예약했고 업체 직원은 이튿날 약속 시간을 5분 넘겨 도착했다. 나는 우리 집 바닥이 개미로 도배되었으니 어서 처단해달라 간절하게 부탁했다. 직원은 챙겨 온 들통에 수돗물을 부어 세차게 흔들고는 이내 온 집안 바닥 모서리를 따라 스프레이로 분사하기 시작했다. 주방부터 거실, 베란다, 방, 화장실까지 촉촉한 화학약품 냄새가 스며들었다.

시간짜리라던 서비스가 20분도 안 되어 끝났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개미를 몰아낼 수만 있다면 아무렴 어떨까. 용병은 2주 뒤 다시 와 확실한 매듭을 짓기로 했다. 이제 정말 개미 안 나오는 거 맞느냐 세 번은 물어봤는데 그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No ants를 반복했다. 단호한 어투에 반해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


오늘로 5일이 지났고 다행스럽게 아직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개미와의 전쟁은 어떤 끝을 맞이할까? 잔인한 대학살일까 아니면 평화로운 종전일까. 눈에 보이는 적군은 사라졌지만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개미는 과연 항복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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