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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Jun 11. 2024

바람이 불면 흙맛이 난다

10.

집을 고를 때는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는데 내 성격이 그러지를 못해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아무래도 구매하는 집이 아니라 잠시 빌려사는 집이다 보니 쉬이 너그러워지고 모든 조건을 갖추지 않아도 이만하면 흡족하게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하지만 역시 살아봐야만 아는 사정이 있다.


내가 사는 인도는 비가 내리기 전이면 어김없이 돌풍이 분다. 온 하늘이 옅고 흐린 잿빛으로 덮이고 거실창이 떨어져 나갈 듯한 바람 소리를 토해내며 자연의 위엄을 과시한다. 그럴 때면 인도 집도 그 리듬에 발맞춰 요란을 떤다. 백이면 백 문과 창이 제대로 막혀있지 않아 틈 사이로 게코 도마뱀도 들락날락하는 마당에 바람이라고 못 들어올까. 비 오는 날이면 그야말로 쉬이잉 쉬이잉 드르르 드르르 거센 진동에 귀청이 얼얼하다.


여기까지는 모든 인도 집의 디폴트 값이라 하겠다. 이사 온 지 나흘이 지난 날, 오후 늦게 짧은 소나기가 내리며 돌풍이 불 때 조금도 놀라지 않은 것은 이미 이전 집에서 2년 동안 충분히 겪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번 집은 색다른 놀라움이 숨어 있었다. 바람이 불면 혀에서 흙맛이 난다. 요거 참 재밌고만. 비록 허술하나마 창에 달려 있는 모든 기물을 사용하여 바람을 막았는데 어찌하여 내 입안에 비릿한 흙이 느껴지는고.


창문, 모기장, 커튼을 뚫고 날아온 흙은 우리 집 주변 공사장에서 온 것이었다. 이 동네는 그야말로 개발붐의 화신이다. 360도 몸을 빙 돌리면 사방이 땅 파 놓은 부지요, 포클레인과 타워크레인 푹푹 꽂혀 있기가 마치 브라우니에 포크 꽂듯 쉽다. 근방이 다 이 모양이니 공사 소리 안 들리는 곳이 없고 하루가 멀다 하고 흙바람이 불어 딱히 이번 집에 유난스럽게 문제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못 했다. 게다가 나는 지난번 집의 2배에 달하는 고층으로 이사 왔기 때문에 설마 하니 이 높은 곳까지 공사장 먼지가 활개를 치진 않겠거니 짐작한 것이다.


꽝이다 꽝. 흙먼지는 우리 집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침투해 내 코와 입까지 들어왔으니 이놈이 아주 대단한 여정을 해내고 있다. 조금 단단히 창문을 막아볼까 싶어 신문지를 둘둘 말아 틈을 메우기도 했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테니 비가 그쳐도 신문지는 그대로 두었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은 방풍지를 붙인다. 컨테이너에 넉넉하게 챙겨와 집 곳곳의 뚫린 문이란 문은 모조리 막고 흙과 비와 먼지를 차단해 조금이나마 집을 집답게 만들어 보는 것이다. 아마도 그냥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내키지 않은 나는 그저 신문지 쪼가리나 둘둘 말아 미봉책으로 어영부영 살아가는 딱한 고집불통을 연출하고 있다. 인도 사람이 하는 만큼만 하고 살자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느덧 몬순 시즌이 되었다. 저기 저 남쪽 께랄라에서 올라오는 비구름이 곧 델리에 도착할 것이다. 8월까지 드문드문 이어질 스콜과 돌풍이 얼마나 많은 흙을 올려 보낼지 궁금하다. 나는 나대로 막아보겠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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