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다

어떤 연말

by Another Kind of


인터넷 쇼핑몰에서 신어 보지도 않고 산 딱딱한 구두가 왠지 끌려 신고 나갔다가 또 역시나 하고 후회하며 돌아오는 밤이다. 종일 일하느라 퉁퉁 부은 발에 그 딱딱하고 약간 작기까지 한 구두를 신으면 걷기 힘들 정도로 발이 부을 걸 알면서도, 또 연말이라고 설렌 마음에 후회할 짓을 하고 만 것이다. 이럴 땐 정말 잠시라도 좋으니 맨발로 좀 걷고 싶은 생각이다.


아픈 발을 이로 꽉 깨물며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올해를 어떻게 보낼까, 혼자 맥주라도 마실까 아니면 예전처럼 연말 연기대상이니 뭐니 이런 티브이 프로들을 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티브이도 라디오도 없는 조용한 방에서 혼자 건반이나 두들길까- 하는 생각들을 하며 집 앞에 도착해 오랜만에 우편함을 뒤졌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이번 달 가스비 고지서. 5만 원이 훌쩍 넘은 금액을 보니 겨울이 오긴 왔나 보다. 그리고 여전히 또 다음 달 10일까지는 가스비를 내야 하는 월말이 왔나 보구나, 싶다. 해는 가고 달도 가고 하루도 가지만, 그렇게 모든 것에는 끝이 있지만 어째서 우리 하루는 단 한 번도 끝이라는 걸 맺어본 적 없이 그렇게 흘러가기만 할까. 그런 삶이 지겨워서 사람들은 그렇게 뭔가를 시작하고 또 끝을 내고 하는 건가 보다.


어쩌면 나이도 그런 것 아닐까? 그냥 흘러가듯이 조금씩 주름져가는 우리 얼굴이 지루해서, 스무 살까지 딱 가르고, 서른 살까지 딱 자르고, 마흔 살까지도 딱 끊어내고 말이다. 그렇게 자르다 보니 스무 살쯤엔 보통 이렇지, 서른다섯이 되면 보통 이렇게 되지, 하는 룰들도 생기고 말이다. 그렇게 시작과 끝에 얽매이다가 가끔은 우리가 잃고 있는 것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시작과 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렇게 우리가 항상 흐르고 있다는 걸 생각하는 거 아닐까? 그럼 지금의 일 분 일 초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어떤 것에 현혹되어 들뜨기보다 원래 추구해왔던 대로, 각자가 추구하는 원래의 그 방향으로 조금씩 더 -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


딱딱한 구두 때문에 발 디딜 수 없을 만큼 아픈 발이 이런저런 생각을 데려오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아무튼 역시 겨울 방바닥은 차디 차다. 아무도 없어서 차디 차고 날씨가 차니 또 더 차다. 보일러를 틀고 내 온기로 방을 다시 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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