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밤, 정글의 아침.

by Amberin

낯선 밤, 정글의 아침.


여행의 첫날은 언제나 감정이 복잡하다.

설렘만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하면 긴장과 불안, 이유 없는 걱정이 함께 따라온다.

이번 여행의 시작도 그랬다.


첫날 도착은 새벽이었고,

나는 밤을 온전히 지나온 듯한 몸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내가 예약한 곳이… 정말 여기 맞나?”


사람이 사는 집이 맞는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는 곳.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거리.

사람이 사는 동네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어두컴컴하고 조용함을 넘어선 정막함이 밀려왔다.

나무기둥 같은 걸 더듬다 간신히 벨을 찾아 눌렀다.

잠에서 깬 주인장이 나왔다.

부스스한 얼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서로 간단한 눈인사만 나눈 채, 그녀는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구불구불한 좁은 복도를 지나자 갑자기 나타난 계단.

그것도 가파른 계단.

운동 삼아 오르는 계단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내려가야 했다.

20kg이 훌쩍 넘는 캐리어와 노트북이 든 백팩을 멘 상태였다.


좁고 가파른 오래된 계단이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린 뒤라 계단은 미끄러웠다.

‘어쩌지,...’

탄성과 함께 후회가 밀려왔다.

'왜 이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여행을 온 걸까.'

'왜 하필 이런 숙소를 선택한 걸까.'

왜? 왜? 왜....


그 순간 그녀가 아무 말 없이 내 캐리어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그 가파른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갔다.

나는 물에 젖은 오래된 나무 손잡이를 꽉 잡고,

발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방.

문을 여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나,... 오늘 여기서 잘 수 있을까?”

침대는 넓었지만 눅눅했고,

욕실의 불을 켜니...


범죄 영화에서 자주 보던 장면처럼,

이곳에서도 금방이라도 사건이 벌어질 것 같았다.

희뿌연 불빛아래

세면대의 물은 졸졸 흐르고

벽에 붙어 있는 작은 거울은 오래된 흔적에
닦아도 내 얼굴이 보이지 않을 것 같고,

샤워기와 변기는 손을 대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었다.

지금 당장 다른 숙소로 이동할 방법은 없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어차피 내일 바로 나가야 해.’

‘지금은 그냥 잠만 자자.’

생수로 대충 얼굴만 씻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언제부터였을까.

새벽 내내 들리던 물 흐르는 소리가

어느 순간 발라드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 위로 닭 우는 소리가 겹쳐지더니

밤은 아침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우와~~~

말 그대로, 우와! 였다.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정글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열대우림의 나무들이 빼곡히 서 있고,

그 사이로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가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자연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들 세계에 내가 잠시 비집고 들어온 느낌이었다.

간밤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걱정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조식 룸서비스로 배달된

간단한 토스트와

예쁘게 깎인 망고, 파인애플이

괜히 나를 웃게 했다.


그리고 다시, 그 가파른 계단.

이번엔 내가 20kg이 넘는 캐리어를 들고 올라가야 했다.

주인장이 도와주겠다고 왔지만

왠지 미안해졌다.
나는 작은 비닐봉지와 종이가방에 짐을 나눠 담고
한번 더 왕복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정글 숙소에서 웃으며 떠났다.

그렇게 우붓 투어가 시작됐다.

가이드는 주말이라 사람이 많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사람 많은 게 싫지 않았다.

오토바이와 자동차, 사람들이 뒤섞여

이리저리 살피며 서로 피해가 되지 않도록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며 움직이는 풍경.

그 혼잡함 속의 질서가

나를 슬쩍 웃게 했다.


처음 만나는 광경에 놀라움보다는

이 낯선 곳에 내가 함께 섞여 있다는 사실이

나는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렇게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장착돼 있던 긴장감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여행의 첫날,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나의 부정적인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쪽 눈을 가리고 내 마음을 보았다면,

오늘부터 양쪽 눈을 똑바로 뜨고

웃으면서 부정적인 마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는지,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여유가

이곳이 여행지라서 가능했던 것일까.

아니면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일까.


분명한 건,

익숙한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났기에

비로소 나 자신을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정적인 마음을 덜어내는 첫날은

이렇게,

정글의 아침처럼

조용하고도 선명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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