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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질 수록 선명해 지는 나

[ 관계에서 자유로워지다 ]

by Amberin

멀어질수록 선명해지는 나


예전엔 그런 자리가 참 좋았다.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면

처음엔 다들 “야 너 진짜 안 늙었다~” “몸에 좋은 거 뭐 먹니?”

등의 건강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얼굴 안 보이는 친구가 생각나면

곧 이런 질문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어, 00는 안 왔네? 걘 요즘 뭐 한 대?”

“애들 대학은 다 어디 갔어?”

“신랑 사업은 잘 된 돼? 아직 그 일해?”

걱정인지 궁금증 인지 모를 질문에

누군가 슬쩍 말꼬리를 붙인다.

“00이 남편 작년에 좀 어려웠잖아? 근데도 여행 다니고 그러더라~”

“맞아 맞아~ 인스타 보니까 맨날 사진 찍어 올리더라.”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어머, 나는 걔가 그렇게 자기 잘난 척하는 줄 몰랐네~”

하며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꺼내 놓는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왠지 내 SNS도 급히 비공개로 돌리고 싶어졌다.

괜히 다음에 내가 안 나오면 내 차례일 것 같아서,...

웃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한 발짝 쓱 물러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즐겁지 않은 자리에 굳이 앉아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걸.

예전 같았으면 나도 한마디 거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더 이상 그런 대화가 재미있지가 않다.

요즘은 차라리 드라마 얘기가 훨씬 재미있는 것 같다.

적어도 그건 내 삶에 직접적인 상처를 주지 않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과의 거리를 조절하게 되었다.

예전엔 약속이 있으면 무조건 나갔지만,

지금은 마음이 끌리는 사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하고만 만난다.

이제는 그런 나를 다독이는 법을 배웠다.

나이 들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느 날, 오랫동안 알고 지낸 A에게 연락이 왔다.

예전 같았으면 반가웠을 텐데,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그 사람과 만남을 가지면 늘 내가 뒤처진 기분이 들었고,

언뜻 칭찬처럼 들리는 말속에

묘하게 나를 깎아내리는 기운이 숨어 있었다.

그걸 애써 못 본 척하고 견디며 "그래도 오랜 인연인데…" 하고 버텼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단호한 이유 대신, 그냥 ‘요즘 좀 바빠서’라는 말로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났다.

그 이후로도 몇몇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레 정리되었다.

억지로 맞추지 않으니, 어색함 없이 흩어졌다.

그때는 만나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거절도 못 하고 모든 약속과 만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내가

이제 와 돌아보니 조금은 안쓰러워진다.

몇 번의 강제적 이별(친구들과의 소통 오류로 인한)을 겪었을 때는

큰일이 생긴 것처럼 아팠지만 이제는 그런 나를 다독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조용한 거리 두기가 시작됐다.

이것은,

나를 위한 조용한 선택이었다는걸.


내가 편안한 사람,

내가 편안해지는 나로,

그 둘이 자연스럽게 겹쳐질 때,

비로소 ‘관계’는 따뜻해진다.

그렇게 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더 나를 알게 됐다.

어떤 분위기가 나를 숨 막히게 하는지,...

어떤 말들이 나를 아프게 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 곁에서 온전한 내가 되는지를...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서, 나는 나에게 가까워졌다.


사람과의 거리가 생기면 흐려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

그리고

나를 지키는 방법.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모두를 품을 수는 없다는 걸...

모든 자리에 어울릴 필요도 없다는 걸....

그저 내가 나답게 웃을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는걸....


멀어졌기에,

비로소 더 선명해진 나.

나는 오늘도,

그 나를 더 깊게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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