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무심한 "미안해"에 마음이 조용히 닫혔다.
요즘은 사소한 일에도 자꾸 마음이 쓰인다.
카페에서 주문이 늦어도,
누군가의 문자 답장이 오지 않아도,
괜히 ‘내가 뭐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누군가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린다.
별일 아닌 상황인데도,
그 작은 틈에서 혼자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러다 괜히 스스로를 다독이듯 말한다.
‘괜찮아, 내가 좀 더 이해하면 되지.’
‘나름 사정이 있겠지.’
‘그래, 조금 더 기다리자. 별일 아니니까.’
나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사람 사이의 갈등이 싫어서 나의 감정을 애써 눌러가며,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조금씩 나를 줄여왔다.
거절보단 양보를,
불만보단 “그래~”의 미소를 택했다.
그게 내 모습이고,
그렇게 사는 게 더 부드러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작은 일에도 내 마음이 쉽게 지치고,
누가 나를 무시하는 듯한 말 한마디에도 유난히 오래 앓았다.
좋은 사람이 되려던 게,
사실은 나를 괴롭히는 일이었을까?...
그 의문이 마음속에 슬쩍 고개를 든 건
아주 평범했던 어느 평일 낮이었다.
그날은 친구 셋과 오랜만에 브런치를 먹기로 한 날이었다.
따뜻한 햇살과 살랑거리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
카페에 먼저 도착해 예쁜 자리를 잡고 메뉴를 고르며 기다렸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지나도 한 친구는 연락이 없었고,
또 다른 친구는 30분이 지나서야 “조금 늦어~”라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여느 때처럼 ‘그래~ 괜찮아, 조심히 와~’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문자를 보내는 순간 마음이 툭 하고 내려앉았다.
한참을 기다려 친구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익숙하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미안~ 진짜 정신없었어” 하고 넘어갔다.
내가 먼저 와서 기다렸다는 건 그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내가 “무슨 일 있었어?”라고 말하면
“넌 아이가 없어서 몰라. 아침엔 전쟁이야.”
그 한마디에 나는 또 말을 삼켰다.
약속은 며칠 전부터 잡혀 있었고,
아이들은 9시 전에 등교했으며,
우리는 12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서만 맴돌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표정이 안 좋았는지,
다른 한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에이~ 너 원래 마음 넓잖아.”
그 말이 내 마음을 더 서늘하게 했다.
무심한 말보다 더 아프게 느껴졌던 건,
그들의 태도였다.
늘 내가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내 마음을 가볍게 여기는 듯한 태도.
마치 “마음 넓은 네가 이해해 주겠지”라는 식으로
나의 서운함을 아무렇지 않게 덮어버리는 그 모습에
나는 순간적으로 미워지기도 하고,
친구들에 대한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대화는 이어지고
웃음도 있었지만,
나는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말은 내게 닿지 않았고,
내 웃음은 자꾸 늦게 따라갔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관계가 정말 건강한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호에 멈춰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늘 ‘이해하는 사람’이어야만 했을까?'
왜 ‘기다리게 한 건 미안한 일’이라는 걸
굳이 내가 설명해야 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이렇게 나를 힘들게 만든 걸까.
내가 아무 말 없이 넘어가 주는 습관이,
결국 누군가에게는 나를 쉽게 대해도 된다는 신호가 된 건 아닐까.
착한 게 언제나 좋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다정함이 당연함으로 소비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제야 조금씩 깨달아갔다.
요즘 나는 천천히 연습 중이다.
상대가 늦었을 땐
“괜찮아” 대신
“다음엔 제시간에 와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해본다.
서운한 마음을 혼자 삭이기보단
조심스럽게 털어놓으려 애쓴다.
그 과정이 서툴고 어색해도,
이제는 ‘나를 지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보다,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으로...
관계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나를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조금 늦게 깨달았지만,
진짜 따뜻함은
누군가를 품으면서도
결국 나를 잃지 않는 마음에서 피어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