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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by Amberin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어릴 적 나는 마흔이 넘으면 모든 것이 저절로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 나이가 되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며,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인생이 단단히 자리를 잡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오십을 넘긴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
현실은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밥을 먹고도 허전해 과자를 집어 들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를 괜히 따는 날이 있다.
주말에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집 안에만 머물며 티브이 앞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나만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만 빼고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은 정해진 루트를 따라 흐르는 듯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차를 사고, 집을 마련하고,
여유가 생기면 해외여행을 다니는 삶.


그 길 위에 선 그들과는 달리,

다른 방향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할 때면
내 인생이 어딘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밀려왔다.


SNS는 그 불안을 더 크게 자극했다.
딸들과 함께 해외로 한 달 살이를 떠난 친구,
결혼기념일에 남편에게 자동차 선물을 받았다는 친구,
부모님과 시댁 어른들을 모시고 가족여행을 다니는 친구들.
화면 속 반짝이는 장면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더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또렷이 느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인생은 실패한 걸까?
아니면 단지,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걸까?


답답함과 억울함, 허탈함이 한꺼번에 밀려오던 때,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결혼이 인생의 정답은 아니야. 각자의 삶은 모두 의미가 있어.”
그 말에 나는 괜히 웃음이 나면서도,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고, 화려한 커리어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지천명을 살아내고 있는 지금,
삶은 결국 ‘사람으로 채워지는 것’ 임을 알게 되었다.


함께 밥을 먹지 않아도 문득 떠올라 안부를 묻는 친구,
아무 말 없이 커피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이웃,
멀리 있어도 마음만은 가까운 누군가.
오랜만에 만나도 편안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오랜 벗,
앞길이 막막할 때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와 파트너들.


예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쓸쓸하고 외로워서 불안했지만,
이제는 누군가 내 안부를 궁금해해 주는 마음 하나가
하루를 따뜻하게 데워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곁눈질을 멈추고 비교를 내려놓으려 한다.
누구의 속도에 나를 맞추어 재촉하지 않고,
누구의 삶을 부러워하느라 내 삶을 깎아내리지 않으려 한다.


가끔은 불안하고, 가끔은 외롭지만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더 따뜻해지고 있다.


내가 걷는 길이 조금 느리고, 남들과는 다를지라도
결국 이 길 위에서도 충분히 삶은 빛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지탱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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