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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01. 2022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김서령 / 푸른역사)

독서노트 _05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꽉 찬 책. 읽고 나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성 가득한 안동 시골 양반네 밥상 한 상을 받아 깨끗이 비운 듯한 포만감이 드는 책

읽으면서 작가의 문장이 범상치 않다고 느꼈는데 역시나 작가가 살아생전 당대 제일의 문장가로 불린 이였음. 명불허전이라는 느낌

이태준의 문장강화가 좋은 문장 쓰기를 위한 개론서라면 김서령의 이 책은 좋은 문장을 위한 각론서이자 좋은 예시라고 보면 될 듯함

지금은 많이 잊혀진 옛 안동의 양반 음식과 서민 음식을 조리법까지 골고루 망라해 놓아, 사료적인 가치도 높다고 여겨지는 책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한 주제에 호흡이 다소 길게 늘어지는 부분도 있으며, 안동 옛 음식을 책으로만 접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이 다소 지루하고 추상적으로 여겨지기도 함

음식에 당시의 문화와 생활상, 정서 등을 담아내어 함께 서술하는 책이 많은데 이 책은 그런 류의 책 중에서는 최고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음. 무엇보다 안동 여성들의 정서와 시각으로 여러 음식과 재료들을 다채롭게 그려냈는데 그게 궁상스럽지도, 마냥 슬프거나 한스럽지도 않게 간이 딱 맞을 정도로 적절하게 그려져 있어 중용의 덕이 책으로 표현된다면 이것이구나 싶음

이런저런 사정으로 내 아이들에게는 내 손맛이 담긴 음식을 해먹이지 못하고 있는데, 나중에 아이들이 무엇을 엄마가 해준 음식으로 기억할까 하는 걱정을 책 읽는 동안 자주 하였음. 어머니의 음식은 저자의 몸만을 키워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 엄마의 음식은 아이들의 살과 뼈와 피와 그들이 살고 있는 우주를 만들어 주는 것

읽고 나면 나도 좋은 문장을 써야겠다는 욕심이 드는 책이며,  책 소개에 있듯 좋은 문장이 고플 때 집어들게 되는 책이 될 듯함

간이 세지 않지만 손이 자주 가는 슴슴하고 친근한 반찬처럼 자주 들춰보게 될 책이라는 느낌이 듦.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도록 기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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