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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Mar 09. 2022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독서노트 _06

평소 관심있던 한나 아렌트의 생애와 사상을 그래픽노블이라는 다소 참신한 형식으로 보여주는 책.

한나 아렌트에 대해 인터엣에 퍼져 있는 단편적인 삶의 궤적과, 다소 난해한 그녀의 사상을 접근하기 쉽고 편하게 그려내어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었음.

책은 세 번의 '탈출 '이라는 주제 하에 그녀의 생애와 사랑, 사상을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보여주는데, 처음과 두 번째 탈출은 위험으로부터의 육체적 탈출이라면 세 번째 탈출은 지적인 탈출이자 확장, 성장인 것으로 보임.

첫 번째 탈출은 유대인으로서 독일에 살다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탈출하는 것인데, 그 무렵 수많은 유대인들이 독일에 그냥 남아 있다가 탈출하지 못하고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녀는 판단이 빠르고 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됨. 이런 면모는 두 번째 탈출인,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어 얼마간 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혼란 틈에 미국으로 탈출한 모습에서도 잘 드러남. 두 번이나 나라를 옮겨 생활하면서도 강인한 생활력과 빠른 판단력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주저앉아 있지 않는 행동력을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모습이 그녀의 철학에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도 듦.

첫 번째 탈출 이전 독일에서 살 때 그녀는 최초의 스승이자 첫 연인인 마르틴 하이데거를 만남. 하이데거와의 만남은 천재들의 만남답게 강렬하고 깊은 흔적을 남겼으며, 그녀의 평생에 영향을 미침. 그러나 이후 그녀의 철학이 발전하면서 하이데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어찌보면 이 역시 하이데거와 무관한 것은 아니며 그와의 관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겠음. 어린 천재와 그의 스승과의 사랑이라는 점에서는 프랑스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과 로뎅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한 뒤 글로 써 볼 예정임.

그녀를 유명하게 해 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녀는 우리에게도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는데, 지금은 이 사상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한나가 발표했던 당대에는 시기상조적인 이론으로서 많은 비난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음. 유대인 동료들로부터도 많은 비난을 받는 가운데 본인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발전시켰던 한나의 지성과 뚝심이 대단하다고 느낌.

세 번째 탈출인 지적인 성장과 확장에서, 그녀는 자신을 규정하고 있던 모든 언어들에서 탈출을 시도함. 철학자, 여자, 유대인, 삶의 의미는 결국 죽음이라고 하였던 하이데거의 가르침에서도..그러면서 살아있는 것은 결국 사유하는 것이며, 모든 인간은 권리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사상을 정립하게 됨. 이러한 점에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했던 데카르트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한나가 파리에서 미국으로 탈출할 때 썼던 가명이 '데카르트 부인'임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우연임.

아직 나는 한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며, 완벽한 이해는 정말 어려운 일일수도 있겠음. 그러나 평생에 걸쳐 해 볼 재미난 숙제가 생겼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내게는 그녀를 이해할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은가 함. 왜 한나 아렌트에 빠졌는가? 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게 바로 사유하는 것이니까, 라고 답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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