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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Apr 10. 202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열림원)

독서노트 _08

선생님!

2학년 때였는지 3학년 때였는지도 가물가물합니다. 선생님의 교양수업을 들은 지 20여년이 훌쩍 지났네요. 몇 학년 때 수업 들은 건지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봤다는 사실만큼은 제 대학생활 4년을 통틀어 가장 큰 자랑거리였습니다. 과목 이름이 뭐였는지, 과제며 시험은 어땠는지도 잘 기억 못하면서 말이죠.


그런 선생님의 수업을, 대학 선배님의 글을 통해 다시 듣게 되니 이건 감회가 새롭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이 수업은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니까요.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 제목에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알자스와 로렌 지방이 독일군에 점령당해, 그 지역에서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을 그렸던 슬프고도 비장한 소설 말입니다. 선생님의 동서양과 생과 사와 지성과 영성을 오가는 유려하고 현란한 말솜씨가 생각납니다. 그런 말솜씨로 이어가셨던 수업이 이제 이 세상에서 영원히 마지막이라는 이야기겠지요. 문득 슬픔에 가슴이 죄어옵니다. 죽음이 끝은 아니며, 슬퍼할 일도 아니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시겠지만요.


선배님의 사려깊은 글솜씨 속에 되살아나는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20여년 전 그 수업의 기억이 떠올라 혼자 눈물도 흘렸습니다. 선생님은 '출입문 '이라는 말이야말로 동양의, 한국의 사상 체계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서양은 출구 아니면 입구인데 그 두 개를 같이 섞어 쓰는 게 동양이며 한국이라구요. 선생님의 수업 속에 등장하는 낱말인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도 마찬가지지요. 선생님의 생각은 어쩌면 그렇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까요. 그리고 그런 만큼,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흥에 겨워 수업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선생님 수업을 청강하러 온 웬 남학생이 신기하여 힐끔거렸던 제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 그 시절로 돌아가서 선생님 수업을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못나게도 최근에 죽음을 자주 생각했었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들의 말도, 시선도, 생각도 모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피곤에 피곤이 쌓여 무기력해지고, 마침내는 영원히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글을 읽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게 집 떠났다 돌아온 탕자와 같은 시각과 용기가 있었다면 어쩌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거라구요. 저는 결국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내기 위해 세속의 규율에 얽매여 사는 탕자의 형제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앓다 돌아가신 암과는 다르지만, 제 병 역시 죽음이 생과 다르지 않음을 시시각각 느끼게 해주는 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을 더욱 가슴을 치며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그래서 이제 좀 더 용기를 가지고, 열린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보려구요. 이런 시기에 선생님의 수업을 듣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는 제게 집 떠난 탕자의 용기와 시각을 가지고 살아라!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만 같아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왜 책 제목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의'만 연두색으로 칠해 놓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어령은 가고 없고 마지막 수업도 끝났지만, '의'가 그 둘을 연결해 줌으로써 뭔가 끝나지 않는 생명력을 부여해주고 누구에게도 연결해 줄 수 있는 끈을 만들어 주는 것만 같아요. '의' 덕분에 마지막 수업은 안지호의 마지막 수업도 되고, 김지수의 마지막 수업도 되며 또 누군가의 첫번째 수업도 될 것입니다. 생기 가득한 연둣빛 '의' 속에서, 선생님은 그렇게 영원히 수업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힘들 때마다 선생님 수업을 재수강할 생각입니다. 그때는 점수 잘 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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