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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Aug 16. 2022

여행의 이유(김영하, 문학동네)

독서노트 _18

'어쩌다보니' 김영하 작가의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처음부터 이 작가의 산문집을 살 생각은 아니었다. 유명한 영화를 일부러 피하고 안 보는 것처럼 나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그게 유명세를 타고 있을 때는 좀 피했다가 붐이 가라앉으면 찾아보는 편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그 작품에 대해 제대로 된 접근을 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작품은 그전에 읽은 적이 없었다. 내가 소설을 거의 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가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오히려 그 작품에 손이 선뜻 가지 않는 것도 있었다.(나 아니더라도 읽어줄 사람 많잖아 라는 생각이랄까)


그랬는데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후로는 그런 '편식'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찌됐건 나는 소설의 기초부터 쌓아나가야 하는 사람이니 기성 작가의 작품이건 신진 작가의 것이건 출간된 모든 작품을 교본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많이 접해야 했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소설 한 편을 교과서를 사는 마음으로 구입하면서 이 책도 같이 사게 된 거였다. 소설을 사게 된 이유와 마찬가지로, 유명 작가의 작품을 통해 글 공부나 해보자는 목적이었다.


해서 작가가 제목으로 내세운 '여행의 이유'에는 처음부터 큰 관심이나 궁금함이 없었다. 여행의 이유야 뻔한 것이 아닌가.  낯선 세계에 나를 던짐으로써 일상의 의미와 소중함을 재발견해보자는 것, 무료한 일상에 변화를 꾀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자는 것, 이 책을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그 정도 될 것으로 생각했다. 오히려 나는 다소 뻔한 주제가 담긴 글을 작가가 어떻게 뻔하지 않게 풀어낼 것인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뻔한 주제라고 해도 역시나 남의 이야기는 재밌었다. 작가의 이야기는 중국에 글 쓰러 가면서 어처구니없게도 비자를 받지 않아 도착하자마자 추방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야기 초반을 남들이 흔히 겪지 않았을 다소 엉뚱하고 강렬한 사건으로 시작한 덕에 나는 어쩌면 이 산문집이 뻔하지 않은 내용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뒤를 계속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흥미가 생겼다. 여행이라는 주제에 대해 책 한 권을 낼 정도로 여행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어보이는 사람이 기본 중의 기본인 비자를 준비 안해서 도착하자마자 추방을 당하다니! 그런 이야기가 이 유명 작가를 조금은 나와 같은 범인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여기게끔 해 주었다.


작가는 아버지의 직업이 군인인 탓에 어려서부터 이 지역 저 지역을 전전하며 생활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생활의 근거지를 옮긴다거나 여행을 한다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직업에 따른 '강제 이주'와 작가 자신의 의지에 따른 이동은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을 터, 어쩌면 작가는 분명 낯설고 힘겨웠을 어려서의 이사에 대한 기억을 떨쳐버리기 위해 여행을 계속하고 사는 곳을 옮겨다닌 것 아니었을까.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여행에 대해 그러한 의미를 찾게 되는 것 외에도 각각의 글에 대해 주제를 정해놓고 그 주제를 넓게, 때로는 깊게 파헤치며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능력은 실로 좋았다. 글은 길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쉽지 않았지만 현학적이지도 않았다. 산문집 한 권을 뭔가에 끌리듯 이틀만에 다 읽으면서 나는 과연 명불허전이라는 생각과, 내 글은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 라는 생각을 함께 하였다. 나의 소설쓰기 여행은 이제 시작이다. 언젠가 내 소설 여행도 어느 지점에 닿아서, 그간의 궤적을 돌아볼 날이 오기는 할까? 지금으로선 그저 열심히 읽고 쓰는 수밖에. 낯선 도시를 탐닉하려는 여행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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