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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Feb 26. 2023

백석평전(안도현, 다산책방)

독서노트_24

얼마 전 가입한 독서모임에서 3월 중순경 백석 평전을 읽고 길상사에서 모일 거라고 했다. 백석, 토속적인 시어를 맛깔나게 구사하는 시인, 젊은 시절 수려한 용모를 뽐내던 시인 정도로만 백석을 알고 있었기에 이참에 이 시인에 대해서 한번 제대로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책은 4백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것이었지만 저자 안도현의 유려한 글솜씨와 치밀한 고증, 적절한 상상력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금세 다 읽을 수 있었다.

북한 출신에다가 해방 이후 북에서만 활동하던 시인이라 한동안 백석은 우리 문단에서는 잊혀진 존재였다. 그러다가 그의 존재가 재발견되고 재평가되어 지금은 서점에서 백석의 글은 물론 그에 대해 평해놓은 글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경성'시대의 백석은 물론 전쟁 이후 북한에서 백석이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도 꽤나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이라서 그의 생애에 대해 아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마음은 많이 착잡하고 아팠다. 말년에 북한에서 찍힌 백석의 모습을 보면 그는 그저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찌든 촌로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962년 이후 백석은 사상이 충실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북한 문단에서 더 이상 글을 발표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는데, 그러고도 그는 1996년에 작고할 때까지 30여년을 더 살았다. 소싯적부터 문학에 대해 치열하게 고뇌하고 사색하며 단어 하나 하나에 그의 삶과 혼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던 사람인데 자의도 아니고 타의에 의해 붓을 꺾이우고 농장에서 양의 똥을 치우는 일을 하며 여생을 보내야 한다면 그에게 삶이란 죽고 싶으리만치 저주스러운 무엇이 아니었을까. 양복 차림이 아니면 길을 나서지 않고, 누군가와 악수만 해도 손을 닦곤 했던 결벽증의 '모던보이'였던 그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애닲게 여기고 애도한다. 젊은 시절 우뚝하던 콧날과 부리부리하고 형형하던 눈빛, 숱 많은 곱슬머리와 진하고 고집스러운 눈썹을 잃어버리고 초라한 북한 노인으로 생을 마친 그를 슬퍼한다. 전쟁통에 어수선할 때 여기로 내려오지..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라고 해서 그의 영혼이 과연 자유로웠을까. 여기나 거기나 펜은 총칼의 위협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북에서 죽고 남에서는 다시 살았다. 언젠가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북녘 땅에서도 다시 살아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펜은 총칼 앞에서 부러질 수는 있어도, 완전히 닳아 없어지기 전까지는 한 글자라도 글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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