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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Apr 01. 2023

속초에서의 겨울(엘리자 수아 뒤사팽, 북레시피)

독서노트 _25

속초 양양으로 1박 여행을 다녀오던 날, 이 소설의 존재를 알았다. 저자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여자로서 그런 사람이 하고많은 곳 중 우리나라, 그것도 속초라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는 게 반가움을 넘어 신기했다. 게다가 속초라면 내가 무척 좋아하는 곳이 아닌가. 우리집은 매년 빠뜨리지 않고 양양 낙산사에 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함께 들르는 곳이 속초이다. 속초에 남편 회사 연수원이 있어 편하고 저렴하게 묵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런 반가움과 신기함 때문에 나는 덜컥 이 소설을 사버렸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내가 그런 사유로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이라고 하기엔 뭔가 미안하긴 하다. 어쨌든 그녀는 절반은 한국 사람이니까) 사람이 쓴,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말로 번역해 주어야만 하는 작품을 사는 것은 참 드문 일이다. 하지만 궁금했다. 내가 사랑하는 바닷가 소도시 속초, 그곳은 '이방인'의 관점에서 어떤 곳으로 그려졌을지.


주인공은 저자처럼 프랑스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난 혼혈 여자로서 낡은 팬션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낸다. 그녀의 어머니는 속초 시장에서 복어 등 수산물을 파는 사람인데 아마 그녀는 어머니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테지만 어머니는 그 사실을 결코 알 리가 없어서 두 모녀의 관계가 주는 묘한 긴장감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주된 관계는 이 낡은 팬션에 그림을 그리러 온 '얀 케랑'이라는 프랑스 중년 남자와 주인공과의 그것이다. 여기서 남녀간의 통속적인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곤란하다. 둘은 끊임없이 가까워지기를 시도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서로에게서 멀어지려고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여자는 욕망하게 된다. 남자가 자신을 그려 주기를, 그리고 자신의 손맛이 깃든 음식을 먹어 주기를. 그러나 남자는 끝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나고 만다. 속초에서의 완벽한 이방인인 프랑스 남자와, 그곳에 깃들어 살고 있지만 기실은 이방인일수밖에 없는 여자의 관계는 그렇게 희미해져 버렸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내내 크고 작은 충격에 휩싸였다. 과연 내가 알고 있던 속초와 저자가 알고 있는 속초는 같은 곳인가? 나에게 속초는 아름다운 동해와 겨울에도 손이 덜 시린 따스함이 있는 곳, 그리고 조금만 가면 내게 마음의 안식을 주는 낙산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다. 속초의 이미지는 내게 밝음과 따스함, 푸근함이다.


하지만 저자가 그린 속초에서는 그런 부분을 찾아볼 수 없얶다. 그곳은 춥고 진득한 눈이 자주 내렸으며 바다 비린내가 풍기고 사람들의 숙덕거림이 있는 메마른 곳이었다. 책을 읽으며 내내 나는 내가 속초라는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내가 아는 속초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속초에서 어쩌면 내가 보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만을 본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속초의 어둡고 냄새나는,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기에 당연할 수밖에 없는 그런 부분을 통찰해 낸 게 아닐까. 어쩌면 그건 그녀가 속초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절반은 이방인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정착하고 싶기도 하고 정착하고 싶지 않기도 한 이방인의 숙명, 그런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잿빛 속초. 다음에 속초에 또 가면 그때는 내 눈에도 잿빛 필터를 장착하고 도시를 한번 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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