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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Feb 23. 2023

산산조각(정호승, 시공사)

독서노트 _23

독후감 공모전 대상 소설에 정호승 님의 이 책이 올라와 있기에 사서 읽어봤다. 정호승 님은 '수선화에게'등의 시와 어른을 위한 동화로 유명한 분이다. 그런 분이 쓴 '우화소설'이라고 해서 책 내용도 모른 채 기대를 가지고 구입했다.

이 책은 수의, 부처님 모형 기념품, 오래된 노송부터 김수환 추기경의 손, 하물며 '진실'까지 실체가 있고 없고를 떠나 온갖 것들을 다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나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참으로 다양한 것들이 나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주제는 얼추 한 가지로 수렴한다. 현재 처해진 상황이나 변화된 상황이 너무나 어렵고 터무니없고 힘들지라도 운명에 순응하며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 이 책의 평론가는 그것을 '순명'이라고 표현하였다.


어떠한 역경이 있어도 그걸 이겨내고 자기 앞길을 운명을 거슬러 개척해야 한다는 말과 글들을 숱하게 접해온 터라 정호승 작가의 이 책 내용이 처음에는 잘 와닿지 않았다. 과연 떤 일이 닥쳐도 그걸 운명이라 여기며 순응하고 따르며 사는 게 잘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내 생각은 확실치 않다. 그래서 이 책의 독후감을 써서 공모전에 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두세 번은 더 읽어야 작가의 뜻이 나에게 와닿을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의회에 계시는, 나와 가까운 과장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 그날은 우울증 증세가 무척이나 심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흐를 것만 같은 날이었고, 자리에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나는 오후에 충동적으로 그분을 찾아 나섰다. 명목은 설 연휴가 되기 전 인사를 드리러 간다는 거였지만 사실은 나와 가까운 사람, 나의 상태를 잘 아는 사람을 만나 숨을 좀 쉬고 위로를 얻기 위함이었다.


내 예상대로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왜 그러냐며 크게 걱정하셨다. 나는 요즘 내 상태가 좋지 않음을 사실대로 말했고, 팀 내에서도 썩 편히 지내고 있지는 못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분은 말을 들으며 어떡하지 어떡해 하며 안절부절 못하셨는데, 누군가 그렇게 나를 걱정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잖이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분은 말하기를, "나는 힘든 일 있을 때 '이건 운명이다'라고 생각하며 버텼다"고 하셨다. 운명은 이겨내거나 거스를 수도 있는 거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어찌할 수 없이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일 터. 그때는 그냥 그런가 하고 넘겼는데 이 책을 읽다가 그분이 말하신 '운명'이 생각났다.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순응하며 따르는 것이란 어떤 삶일까. 그건 얼핏 생각하면 줏대없고 수동적인 삶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자기 자신을 운명의 주인공으로 삼고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일수도 있지 않을까. 가끔은 내가 어쩌다 우울증을 앓게 됐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사무실에서는 누가 내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놀라서 가슴이 철렁하기도 하지만 이제 한번쯤은 그래, 내가 이런 상태로 지내야 하는거구나, 이렇게 하루하루 견디면서 살아가야 하는구나 라고 받아들이며 지내볼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운명의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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